25일 오후 경기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만나다’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기 전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이 별도의 가이드라인이라도 내놓으란 얘기냐?”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정지 조치에 대통령은 왜 침묵하느냐’는 물음에 25일 청와대 관계자가 내놓은 반응이다. 법무부 장관이 법이 정한 권한에 따라 행사한 징계 절차에 대통령이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전날 내놓은 ‘한 줄 입장문’의 연장이다. 청와대는 전날 법무부 장관의 사전 보고 여부와 관련한 문의가 이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 발표 직전에 관련 보고를 받았으며, 그에 대해 별도의 언급은 없었다”는 공지문자를 출입기자들에게 보냈다.
청와대가 중요 현안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특히 입법부나 사법부의 소관 사안에 대해선 “특별히 밝힐 입장이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청와대가 섣불리 입장을 밝히는 것은 헌법이 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 국회에서 여야가 협상을 통해 합의 도출을 시도 중인 현안 등이 대표적이다. 청와대의 섣부른 의견 표명이 수사나 재판, 국회 협상의 암묵적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침묵의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행정부 소속인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다툼이 본질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태 초기부터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입장은 “아직은 대통령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무부 징계위가 심사를 거쳐 해임을 건의하면 그다음에야 대통령의 업무가 된다는 논리다.
직무정지 사유가 정당한지를 두고 법적 다툼의 여지가 남아 있는 점도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관측도 있다. 윤 총장은 전날 “위법·부당한 처분에 끝까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윤 총장은 25일 자택에 머무르며 직무정지 취소 가처분신청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경우 법적 다툼의 결과는 고스란히 정치적 부담으로 넘어온다. 당장 법원이 윤 총장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기라도 한다면 본안 소송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 수세에 몰리게 된다.
현재 상황은 청와대에 마냥 유리하지는 않다. 전날 정의당이 “청와대가 이 문제에 대해 방관할 것이 아니라 책임 있게 입장 표명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침묵을 꼬집은 데 이어, 이날은 참여연대마저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서로 권한을 놓고 대립하다 결국에는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현재의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 대통령은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말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침묵이 길어지면 침묵을 깨기가 더 어려워진다. 당장은 부담스럽더라도 대통령이 나서는 게 순리”라고 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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