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가 21일(현지시각) 정상회담을 통해 두 나라의 동맹 관계를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글로벌 동맹’으로 위상을 끌어 올렸다. 또 기후 변화, 코로나19 등 보건 대응, 첨단기술 분야의 공급망 유지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는 미래 동맹으로 나아가는데 합의했다. 미사일 사거리 제한 철폐 등으로 한국의 독자적 역량을 끌어 올린 뒤 이를 장차 중국을 견제하는데 활용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 오후(현지시각) 미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며’라는 장으로 시작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문서에서 두 나라는 “한-미 관계의 중요성은 한반도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서 우리의 공동 가치에 기초하고 있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우리 각자의 접근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두 나라는 이런 인식 아래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구상을 연계하기 위해 협력하고, 양국이 안전하고 번영하고 역동적인 지역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담 머리발언에선 “한-미 관계는 인도·태평양 지역과 미래 세계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한-미 간의 파트너십은 아세안이나 쿼드, 그리고 일본과의 3자 협력과 같은 협력을 통해서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심을 모은 대중 정책 조율과 관련해선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요소로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문제를 거론하는 등 중국을 일정 부분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중국이 핵심적 이익으로 간주하는 대만과 관련해 지난달 16일 미-일 공동성명에서 언급한대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노골적 비난이 담긴 미-일의 성명과 달리 중국이란 국명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한국을 압박해 쿼드 등 대중 연합 전선에 줄을 세우기보다, 한반도가 놓인 독특한 지정학적 입장을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실제, 문 대통령은 회담 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좀 더 강력한 대중 메시지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의 압박이 있었냐’는 취지의 질문에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압박은 없었다. 다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두 나라는 공동성명의 다음 장인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포괄적 협력에선 “기후, 글로벌 보건, 5G(5세대 통신) 및 6G(6세대 통신) 기술과 반도체를 포함한 신흥기술, 공급망 회복력, 이주 및 개발, 우리의 인적 교류에 있어서 새로운 유대를 형성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안보와 가치를 넘어 경제와 환경, 사회와 문화, 인적 교류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확장된 전지구적 동맹의 영역으로 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셈이다. 청와대 핵심 당국자는 이런 변화를 “한-미 동맹의 신기원이 시작되는 것”이란 말로 표현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그와 함께 한국의 군사 주권과 대북 정책에 대한 자율성의 범위를 대폭 늘렸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 변화가 1979년 이후 40여년 동안 한국의 미사일 주권을 제한해 온 한-미 미사일 지침의 폐기 결정이었다. 두 나라는 공동성명에서 “한국은 미국과 협의를 거쳐 개정 미사일 지침 종료를 발표하고, 양 정상은 이러한 결정은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 지침이 폐기되며, 한국은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최대 800㎞’라는 미사일 사거리 상한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게 됐다. 이는 시야를 넓혀 보면, 한국이 직접 중국 베이징을 타격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2018년 6월12일 북-미 정상이 확인한 싱가포르 공동성명뿐 아니라 남북 정상이 서명한 4월27일 판문점 선언까지 언급하며 “기존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데 필수적 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 했다”고 밝혔다.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열린 소인수 회담을 하고있다. 연합뉴스
한-미 동맹을 이전보다 역할과 위상이 확장된 글로벌 동맹으로 끌어 올린다는 미국의 결의는 취임 뒤 두 번째 백악관에 초청하는 외국 정상으로 문 대통령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전통적 우방인 캐나다와 영국 보다 빠른 일정이다. 한-미 동맹을 미국의 아시아 내 이익을 지키는 미-일 동맹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대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날 양 정상은 단독·소수·확대 회담으로 이어가며 모두 171분 동안 의견을 나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단독 회담을 했을 때 너무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오래 논의했기 때문에 제 스태프가 너무 오랜 시간을 대화하고 있다는 메모를 계속 보냈다”면서 “매우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다만, 높아진 전략적 위상만큼 한국이 감당해야 할 부담 역시 커지게 됐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에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하는 코백스 선구매공약(AMC)에 대한 기여를 올해 내 상향하겠다고 했고, 글로벌 보건안보구상 등을 지지하기 위해 2025년까지 2억달러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앙아메리카 나라 사람들의 미국으로 유입을 막기 위해, 이들 나라를 개발하는 협력 사업에 2억20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6월 영국 콘웰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다시 만나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 회의에는 의장국 영국의 초청으로 문 대통령도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한국을 방문해 달라는 초청의 뜻도 밝혔다.
이완 기자, 워싱턴/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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