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과 장남 안필립 선생(도산 선생의 오른쪽 옆).
광복절 76돌을 맞이 1919년 충남 천안에서 광부들의 만세시위를 이끈 박창신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으로 미국에서 대를 이어 독립운동에 앞장선 안필립 선생, 임시정부 비행학교에 입교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손이도 선생 등이 새로 독립운동가로 인정됐다.
국가보훈처는 13일 보도자료를 내어 이들을 포함한 247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포상자 중 생존 유공자는 없고, 여성은 14명이다.
박창신 선생은 1919년 3월25일 충남 천안군 소재 직산 금광회사 고용인으로, 동료들을 설득해 만세시위 계획을 세웠다. 사흘 뒤인 28일 오전 금광 광부들의 교대시간을 틈타 광부 등 200여 명을 인솔해 천안 입장시장까지 시위행진을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안필립 선생은 1938년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본의 한국 침략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고, 1940년 10월 한국광복군 창설 축하식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한미친우회를 관리하였으며, 1942년 3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주관한 ‘한국일’ 행사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한 공적 등이 확인됐다. 선생이 독립운동에 나선 1938년은, 아버지 안창호가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된 뒤 고문과 옥고로 인한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 해였다. 선생은 태평양전쟁 때 미군에 징집돼 참전했고,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에 진출한 최초의 아시아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1950~70년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손이도 선생은 1920년 초 임시정부 군무차장 노백린 선생 등이 주도해 미국 캘리포이나주 윌로우스 인근에 설치한 임시정부 비행학교에 입교해 비행교육을 받았다. 이후 1944년 주미외교위원부 협찬부 서기로 활동했으며, 1918~1942년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했다. 이번 서훈으로 인해 첫째 형 손정도 선생(1962년 독립장), 둘째 형인 손경도 선생(2020년 건국포장)에 이어 3형제가 모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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