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자랑하는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발사 차량. 현재 개량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일본 방위성 제공
지난달 31일 한-일 양국 모두에서 내년도 국방예산(일본에선 방위예산이라는 표현 사용)안이 발표됐습니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다소 변동이 있겠지만, 한국의 내년도 국방예산은 올해보다 4.5% 늘어난 55조2277억원, 일본의 예산은 2.6% 늘어난 5조4797억엔(57조5220억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두고 일본에선 한-일의 국방예산이 이제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실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일치 기사에서 실제 구매력을 기준으로 할 경우, 한국의 국방예산이 2018년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는 일본 정부의 평가를 소개했습니다. 두 나라의 경제 규모가 아직 2.5배 정도 차이 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1인당 국방예산은 한국이 일본보다 2.5배 정도 더 많은 셈입니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로 한국의 국방예산은 꾸준히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임기 이듬해인 2018년부터 해마다 평균 6%씩 늘어 2022년 국방예산은 총 37% 늘어났습니다. 이는 노무현 정권(53%) 시절보다는 낮지만 이전의 두 보수 정부인 이명박 정부(29%)나 박근혜 정부(17%)보다는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에 진보 정부 들어설 때 국방예산이 더 많이 늘어나는 ‘역설’은 여러 이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설은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전시 작전권 전환’ 등 자주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레 국방예산이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으로 전작권 전환을 위해 노력하며 국방비에 많은 돈을 쏟아 부었지만, 보수 정부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이미 정해진 전작권 일정을 뒤로 늦추면서까지 미국에 의존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자리에선 내년도 일본 방위예산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을 하나 소개해 보려 합니다. 일본 방위성은 매해 8월 말 내년도 방위예산의 세부 내역을 소개하는 <우리 나라의 방위와 예산>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일반에 공개합니다. 전체 56쪽으로 구성된 올해 보고서는 지난달 31일 공개됐습니다. 이 보고서 중에서 한국 입장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내용은 ‘12식 지대함 유도탄 능력 향상’을 위한 개발비용이라며 379억엔(약 4000억원)을 편성한 것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걸까요. ‘지대함 미사일’이란 말 땅 위에서 적의 함선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란 의미입니다. 이 가운데 12식의 사정거리는 200㎞+α(알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 미사일의 성능을 크게 개선하는 연구를 지난해부터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군사전문가인 마에다 데쓰오가 <세카이> 9월호에 쓴 글을 보면, 12식을 개량하면 사정거리가 900㎞정도까지 늘어난다고 합니다. 일본이 이 미사일의 능력을 키우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중국 견제’를 위해서입니다. 현재 미-중 간의 치열한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동중국해의 아마미오시마에서,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개량형을 발사하면, 저 멀리 상하이 부근의 중국 함선을 노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일본이 2022년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성능 개량에 379억엔(약 4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부분. 일본 방위성의 <우리 나라의 방위와 예산>에서 발췌.
그 뿐일까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해 12월18일 각료회의를 열어 “도서부 등에 대한 침공을 시도하는 적의 함정 등에 대해 위협권의 밖에서부터 대응을 실시하기 위한 ‘스탠드 오프’(stand off) 방위능력의 강화를 위해 중기방위력계획에서 진행되어 오던 ‘스탠드 오프 미사일’의 정비 및 연구 개발에 다양한 플랫폼에서 운용을 전제로 한 12식 지대함 유도탄 능력의 향상을 위한 형태의 개발을 추가해 진행한다”는 내용을 확정했습니다.
말이 좀 어려운데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중-일은 동중국해의 무인도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2010년 이 섬을 둘러싼 극한 대립 이후 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언제든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안보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이후 일본은 두 가지 방향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첫째는 미-일동맹의 강화입니다. 두 나라는 2015년 미-일 안보협력지침을 개정해 미-일 동맹의 역할과 활동 범위를 크게 늘렸습니다.
두번째는 일본의 자체적인 능력 강화입니다. 일본은 규슈 남단부터 오키나와 본토를 거쳐 일본 영토의 최서단인 요나구니시마를 잇는 난세이 제도에 대한 안보 태세를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 센카쿠 열토를 탈취하기 위해 접근하는 중국의 함선을 포착해 공격할 수 있도록 레이더와 미사일 부대를 배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018년 말 일본 정부가 발표한 일본 중기방위력계획을 보면, 여기에 활용할 수 있는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사정거리를 늘이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각의 결정을 통해 추가된 것은 이 지대함 미사일의 ‘운용 플랫폼’을 확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현재는 지상 발사만 가능했던 것을 비행기를 통한 공중 발사, 함선을 통한 해상 발사도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내년 방위예산의 내역을 담은 보고서에 “12식 지대함 유도탄 능력을 향상하는 것에 더해 내년부터는 함정 발사형 및 항공기 발사형 개발에 착수한다”는 내용을 명기해 두었습니다. 거기에 소요되는 예산이 379억엔이라는 것입니다.
이 개발이 완료되면, 일본은 앞으로 지대함 뿐 아니라 공대함, 함대함에서도 이 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일본이 도입하는 F-35에 이 미사일을 탑재한다면, 경우에 따라선 일본이 직접 평양이나 베이징의 핵심부를 공격할 수 있게 됩니다. 일본이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적기지 공격 능력’을 사실상 갖추게 되는 셈입니다. 한국 입장에선 적잖이 신경 쓰이는 안보 환경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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