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군 전술핵운용부대 등의 군사훈련을 지도하며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9일까지 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ㆍ장거리포병부대ㆍ공군비행대의 훈련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0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9·19 남북군사합의가 기로에 섰다. 연속 무력시위 중인 북한이 발사한 포탄이 14일 새벽과 오후 9·19 군사합의에서 사격·훈련을 금지한 동·서해 완충구역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9·19 군사합의) 위반인 것은 맞다.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 4시간37분 동안 공군기 위협비행→서해 방사포 사격→동해 단거리미사일 1발 발사→동해 방사포 사격 순으로 연쇄 무력시위를 벌였다. 북한 군용기 10여대는 한반도 동서 내륙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을 기준으로 5㎞(서부 내륙), 7㎞(동부 내륙), 12㎞(서해 NLL) 바로 앞까지 근접했다. 단거리탄도미사일은 평양 순안 일대에서 발사돼 50여㎞ 고도로 동해상으로 700여㎞를 비행했다. 북한은 14일 오후 5시쯤에도 동해, 서해상으로 포 사격을 했다.
특히 북한이 이날 새벽과 오후에 쏜 포탄은 동·서해 해상완충구역 안에 떨어졌다. 남북은 9·19 합의 때, 동·서해 북방한계선 위아래(속초~통천, 덕적도~초도)를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해상완충구역으로 설정해, 포 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기로 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이날 새벽 1시20분부터 황해도 마장동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130여발, 새벽 2시57분부터 강원도 구읍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40여발의 포병 사격이 있었다”고 했다. 합참은 “이날 오후 5시께부터 북한 강원도 장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80여발의 포병 사격과, 오후 5시20분께부터 서해 해주만 일대에서 장산곶 일대까지 200여회의 다수 포성과 물기둥을 관측해 조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북한 방사포 사격이 9·19 합의를 깬 것이냐’는 물음에 “유감이다. 저희도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다. 위반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다만, 선제타격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는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선을 그었다. 앞서 이날 긴급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9·19 군사합의 위반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7차 핵실험 등 북쪽이 이른바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으면 남쪽도 9·19 군사합의 준수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9·19 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은 북한이다. 합의가 계속 유지될 것이냐, 파기될 것이냐 하는 것은 결국 북한 태도에 달렸다”고 말했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도 <와이티엔>(YTN) 라디오에서 “우리가 이것(9·19 합의)을 폐지한다기보다는 북한에 준수하라는 요구를 계속하려 한다”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남북이 모든 군사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합의다. 합의에는 △서해 해상 평화수역화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군사분계선 일대 군사 연습 중지 등이 담겨 있다. 남북 접경지대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을 막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9·19 군사합의는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다”며 “남북이 정세 관리를 위해 9·19 합의 준수 의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는 9·19 합의 같은 남북 간 체결된 합의서의 전면 파기는 불가능하고 따로 기한을 정해 효력을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