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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연비 1㎞ 쇳덩어리’ 가득…탄소배출 세계 4위 기후악당은 ‘군대’

등록 2023-06-17 13:00수정 2023-08-16 18:47

서재정의 한반도, 한세상
군이 남기는 탄소 발자국
미군 B52 전략폭격기(왼쪽)와 편대 비행을 하는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오른쪽). 항공자위대 누리집
미군 B52 전략폭격기(왼쪽)와 편대 비행을 하는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오른쪽). 항공자위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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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심각한 도전은 북한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7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최대의 위협이라고 못을 박으며 시작한다. 북이 올봄 들어 새로운 종류의 핵탄두를 공개했고, 다양한 핵·미사일을 시험·훈련했다는 점에서 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이 왜 핵·미사일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 결여돼 있다.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없는 채로 내놓은 대응책은 상황을 악화시키기 안성맞춤이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라고 하면서도 환경문제 해결이 아니라 기후온난화를 심화시키는 길로 세계를 이끌고 있다.

‘국가안보전략’과 “얽힌 안보 딜레마”

미국의 국제안보 학술지 <인터내셔널 시큐리티>는 최근 “얽힌 안보 딜레마”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이 방어를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면 상대국은 그 군사력에 위협을 느껴 자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안보 딜레마가 더 복잡하게 얽혔다는 의미다. 이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나 정밀타격능력과 같은 비핵 군사력이 강화되면 중국의 핵 억제력이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중국은 핵 군사력을 강화하게 되고, 중국의 핵 군사력이 강화되면 미국은 핵 군사력과 비핵 군사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얽힌 안보 딜레마 상황이 됐다. 게다가 미국이 폭발력이 작은 ‘저준위’ 핵탄두를 개발하면서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비핵 위기가 발생해도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하고 핵무력을 증강하고 있다. 이는 또 미국의 군비 증강을 초래하고 있으니 여러 가지가 얽힌 복잡한 상황이다.

이 개념은 한반도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있다. 북이 한국을 공격하면 미국은 핵무기로 보복할 것이라는 위협이다. 하지만 확장억제는 필연적으로 북에 위기감을 초래해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가 됐다. 북은 한국 국방비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군비경쟁에서 뒤지고 있으니, 이런 비핵 군사력 열세가 핵개발을 재촉하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윤석열 정부는 ‘3축 체계’ 및 ‘발사의 왼쪽’을 운운하며 북의 핵·미사일 능력을 사전에 제거할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도 이러한 군사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저준위 핵탄두의 사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북이 지난해 핵 선제 사용을 공언하게 된 배경이다. 한반도에서는 미-중 관계보다도 안보 딜레마가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마치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그나마 ‘워싱턴 선언’이 현 정부 들어서 거세지던 독자 핵무장 주장을 주저앉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확장억제는 이 선언으로 더 강화됐다. 억제는 군사 능력과 정치적 의지로 구성되므로 바이든 정부가 의지를 더 명확하게 하고, 이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조치들을 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핵무기 개발 운운하던 흐름은 일단 멈췄다. 최소한 미국의 전술핵을 재반입하자는 주장들도 주춤해졌다.

그러나 확장억제는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현상 유지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분단과 정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확장억제는 ‘핵위협’을 그 본질로 하기 때문에 북의 불안감을 볼모로 한다. 핵억제를 강화했다는 것은 북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은 당연히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군비경쟁은 한 단계 더 상승하고 그만큼 전쟁 위기도 커질 것이다.

기후위기 대책으로 안보 위협 해소를

윤석열 정부는 ‘국가안보전략’에서 “기후변화”를 신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며 이는 개별 국가 차원의 대응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므로 국제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지구온난화를 중단시키는 데 기여하려면 군대의 탄소발자국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세계의 군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세계 배출량의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발자국으로만 비교한다면 군대라는 기구는 중국, 미국, 인도 다음으로 큰 ‘기후 악당’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미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해서 미군이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웬만한 국가의 배출량을 상회한다. 2019년 미군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5900만톤으로, 4800만톤을 배출한 스웨덴보다 훨씬 많다.

미국 정부 안에서도 미 국방부는 막강한 ‘기후 악당’이다. 매해 연방정부 전체 연료 소비량의 80%를 사용한다. 보유하고 있는 건물의 난방과 냉방에 쓰이는 연료가 엄청나다. 군사작전에 사용되는 차량과 장비도 마찬가지다. 군용 장비는 연비가 최악이다. 군용차량인 험비는 1리터로 고작 1.7~3.4㎞를 간다. F-35는 1㎞를 비행하는 데 제트유 5.7리터를 사용한다. 엄청난 양의 연료를 불태워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환경을 파괴한다. 군대는 이중의 ‘기후 악당’인 것이다.

그런데도 군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정확하게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 위에서 제시한 수치들은 서구 학자들이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서 추산한 것들이다. 이유가 있다. 1997년 12월 교토의정서 협상 막바지에서 미국 대표 스튜어트 아이전스탯은 미군이 외국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보고의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이 요구는 의정서에 반영됐다.

이 의정서는 2015년 파리협정으로 발전해 군대의 탄소배출량 보고의무를 면제해주는 예외 조항은 사라졌고, 각국 정부의 재량에 맡겨졌다. 아직도 한국을 위시해 대부분의 정부는 군대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지도 보고하지도 않고 있다. 미국의 예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각 정부에서 가장 큰 탄소발자국을 가진 기구의 탄소배출량을 보고하지도 않고 규제하지도 않는 것은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에서 커다란 구멍이다.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안보를 위해서도 세계의 환경을 위해서도 앞장서야 할 일은 확실하다. 얽힌 안보 딜레마에서 한반도를 풀어내면 대한민국의 평화가 따라올 것이다. 세계 기후온난화 중단의 길에서 세계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방문학자로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에 머물고 있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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