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마디로 말해 ‘무식’하다. 지식이나 식견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정부의 장관들이나 그 주변 학자들의 발언들은 한심할 정도로 무식하다. 그래서 위험하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일 “9·19 군사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의 임박한 전선지역 도발 징후를 실시간 감시하는 데 굉장히 제한된다”고 주장했다. 2018년 9월19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서명한 ‘판문점선언(4·27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가 한국에 불리하다는 말이다. 이 합의에 따라서 군사분계선에서 20~40㎞까지 전투기·정찰기 등 고정익의 비행이 금지됐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 징후에 대한 전선 감시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대한 신속하게 합의 효력 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참으로 무식한 발언이다. 신 장관이 합의서 내용을 알고 있다면 할 수 없는 주장이다. 합의서 전문을 읽기가 버거웠다면 그 내용을 지도 위에 그려 넣은 것이라도 볼 수 없었을까.
이 합의는 남북에 공평하게 적용된다. 동부지역에서는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40㎞까지, 서부지역에서는 20㎞까지 고정익의 비행이 금지되지만,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도 같은 지역이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의 전선 감시가 어려워진 만큼 북한군의 감시활동도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군비통제 합의가 양측에 동일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한국군만이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식한 것이다.
9·19 군사합의에서 “쌍방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강구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훈련 중지, 군사분계선 상공의 비행 금지,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대책, 연락체계 설치 등에 합의했다. 더 나아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고,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며, 상호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들을 강구하기로 했다. 남과 북이 동일하게 군사활동을 통제하고 동일한 상호적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이지, 한국군의 활동만을 제약한 것이 아니다.
신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방어하는 데 제한사항이 있으면 적극 개선 노력을 하는 게 국방장관의 책무”라며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해서 북한군의 제한사항을 풀어주는 것도 국방장관의 책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합의가 효력 정지되면 한국군의 제한만 풀리는 것이라고 정말 무식한 주장을 하는 것인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1일 국감에서 더 무식한 발언을 했다. 그는 9·19 합의에 대해 “우리가 북한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감시정찰 기능을 스스로 상쇄하면서 심각하게 대북 군사대비태세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감시정찰 기능은 한국이 북한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말은 맞다. 그래서 한국은 군사분계선 40㎞ 뒤에서도 북한을 깊이 감시할 수 있고 세밀하게 정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감시정찰 기능이 낙후한 북은 40㎞ 뒤로 물러나니 한국이 완전히 깜깜하게 보일 것이다. 이런 과학적 지식을 모르는 듯한 ‘무식’한 발언을 안 의원이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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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발언은 태평양 너머에서도 들려온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가 4일 개최한 ‘한반도 안보’ 청문회에서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는 “북한 미사일 발사를 무력화하기 위해 선제적 조치를 포함한 새로운 선언적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발사된 미사일을 격추하는 것일 수도 있고, 발사대를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선제적 조치’는 국제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선제타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무식’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사일은 사실상 선제타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탄도미사일은 연료가 연소하는 동안 추력을 받으며 비행한다. 연소 단계가 끝날 때까지 그 미사일의 궤도와 탄착점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는 경우에는 마지만 단계의 연료가 소진될 때까지 그 탄두의 목표를 아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 미사일을 격추하는 것만으로도 국제법에 위반되는 선제공격이 될 수 있다. 발사대를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확실한 ‘공격’ 행위가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북의 공격을 합법화해주는 ‘도발’이 될 수 있다. 한국이나 미국을 공격하려고 미사일을 발사하려다 한국의 ‘선제타격’을 받더라도 자신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다. 공해상 목표를 겨냥한 시험이었다고 우겨도 이를 부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북은 공격을 받았으므로 ‘자위’를 위해 반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빅터 차의 선제타격론은 북에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그가 이를 모르고 발언을 했다면 정말 ‘무식’한 것이다.
이런 무식한 발언들이 도처에서 나오는 이유는 대통령실과 무관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월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강한 군대만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한다”고 선언했다. ‘힘을 통한 평화’라는 국정기조를 더욱 구체화해서 다시 강조한 것이다. 힘만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믿음이야말로 ‘무식’의 발현이다. 안보 딜레마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것은 미국 정치학자 존 허츠였다. 그는 1950년 왜 이 개념을 들고나왔을까? 그는 현실주의자였지만 힘만으로 안전을 보장하려는 무식한 현실주의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아무리 군사력이 강해도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주먹을 휘두르면 상대방도 주먹을 휘두르고, 힘을 키우면 상대방도 힘으로 맞선다. 한국이 강한 군대를 키우면 북도 강한 군대로 대응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딜레마다. 해서 미국은 냉전 시기에도 소련과 대화했고 군비통제에 합의했다.
강한 군대만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명백한 이치요, 부인할 수 없는 역사다. 이를 모르면 무식한 것이고, 알면서도 무식한 척한다면 더욱 위험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