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훈련을 단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023년 한 해의 한반도 안보 상황은 한마디로 윤석열 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에 대한 북한의 ‘강 대 강’ 대응으로 군사적 긴장이 계속 높아졌다는 것이다. 단지 전쟁과 군사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 평화는 없었다. 새해 첫날 북한은 비행거리 약 400㎞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국방부는 1월16일 새로 발간한 ‘2022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을 ‘부활’시켰다. 북한 체제상 그 정권과 군대는 곧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다. 북한은 곧바로 남한을 주적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자유의 방패’라는 새로운 명칭의 정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3월과 8월 두차례 역대급으로 실시되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연합훈련과 한국군 단독 훈련들이 연중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미국의 항공모함·핵잠수함·핵폭격기 등 전략자산들이 한반도에 ‘상시 배치’ 수준으로 전개되었고 한·미를 넘어 한·미·일 해상 훈련과 미사일 요격 훈련도 사실상 공식화되었다. 북한의 대응은 주로 미사일 발사였다. 연말까지 수십차례의 ‘훈련’을 통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더하여 단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잠수정, 잠수함 등에 ‘핵탄두’를 장착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평화의 수단인 ‘힘’은 미국의 핵전력과 한·미·일 공조로부터 나온다. 8월18일 최초의 정식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렸다. 인도·태평양 지역 및 전세계 평화와 번영, 구체적인 협의체의 창설, 확장억제와 연합훈련, 경제안보 강화 등을 위한 협력을 다짐하는 ‘캠프 데이비드 원칙’ ‘캠프 데이비드 정신’이라는 문서를 채택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3국의 ‘협의’(consult)를 공약하는 별도 문서도 함께 발표했다.
미국은 마침내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통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일본과 미·일에 순응하고 추종적인 윤석열 정부를 묶어 3국 공조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사실상의 동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따라오는 후속조처들은 미국 전략자산의 무제한적 한반도 전개와 한·미·일 3국의 연합 군사훈련 등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도 동시에 겨냥한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사협력으로 실행되고 있다.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린 지 한달도 안 된 9월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났다. 4년 반 만의 재회인 정상회담에서 공식 발표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양국이 군사·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명백하다. 북·러 군사협력에 대해서는 이미 7월27일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계기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을 방문하여 중요한 실무협의를 진행한 바 있었다.
북·러 협력으로 군사 분야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북한이 어떤 형식으로든 러시아에 무기를 포함한 군사적 지원을 하는 한편, 러시아는 북한에 대하여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하기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연합훈련과 군 인사 교류 등의 계획도 앞으로 좀 더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의 후속조처로서 경제협력도 실질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11월14~16일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은 제10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 회의 참석을 위해 평양을 방문해 무역·경제·과학기술 등 다방면의 협력사업을 활성화한다는 ‘의정서’를 체결했다. 별도의 인터뷰에서 그는 관광 활성화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12월11~15일 연해주 주지사 일행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대외경제상을 만나 “두 나라 사이 지역 간 경제협조를 보다 높은 단계에 올려세우기 위한 문제들”을 협의했다.
북·러 간의 다방면 협력이 본궤도에 오르고 북·중 간의 전통적 우호관계가 실질적 협력으로 확대되면 북한이 서방의 봉쇄와 제재를 뚫고 국내 경제·민생 문제를 해소해 나가면서 제한적이나마 국제사회에 등장하고 국제기구에도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의 과도한 미·일 치중 외교와 중국·러시아에 대한 사실상의 적대적 정책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데 기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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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23년 5월과 8월 두차례의 실패를 딛고 11월21일 ‘천리마-1형’이라는 로켓을 이용해 ‘만리경-1호’ 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이번 위성은 과거 궤도 진입에 성공했던 ‘광명성 3-2호기’(2012)와 ‘광명성 4호기’(2016)보다 위성체의 중량이 정찰장비를 탑재할 정도로 커졌고 북한은 백악관·펜타곤, 미국 본토 및 해외 미군기지 등을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은 핵무력의 ‘완성도’와 그에 기반한 억제능력을 한층 더 높여줄 수 있다. 당연히 북한은 2024년에도 정찰장비의 성능 향상과 함께 추가적인 정찰위성 발사를 계속할 것이다.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한 이튿날 남한은 ‘9·19 군사합의’ 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이 조항은 군사분계선 남북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다는 것이다(전투기와 정찰기는 동부 40㎞ 및 서부 20㎞, 기타 무인기와 헬기는 10~15㎞ 구역). 그리고 그 다음날 북한 국방성은 “군사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며 “지상 해상 공중에서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에서 폐쇄한 감시초소(GP)를 복원하고 무기를 반입했으며 서해안의 해안포들의 포구를 개방했다.
이러한 맞대응 조처는 접경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충돌 가능성을 높여주는 남북한 간 완전한 음합(negative sum) 게임이다. 굳이 따지자면 재래식 전력과 원거리 정찰능력이 열세인 북한에 상대적으로 더 큰 군사적인 이점을 줄 수도 있다. 남한의 우세한 전력은 그 정도의 ‘제한구역’을 지키더라도 정보와 작전 측면에서 별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부터는 다시 문재인 정부 이전처럼 비무장지대 내와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서의 남북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항상 우려해야 하는 안보 상황에 처하게 됐다.
2024년이 된다고 하여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대북 대결노선이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의 강 대 강 대응기조도 유지될 것이다. 희미하나마 희망을 가져본다면 4월 총선에서 평화를 실천하려는 정치세력이 국회를 주도하게 되는 것 정도다. 또 한가지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북·미 관계의 개선을 과감하게 추진하고자 하는 새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염원하는 다수 국민들의 존재일 것이다. 험난하지만 가야만 하는 평화의 길을 2024년에도 함께 의연히 걸어가야 한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 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