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남아있는 대화통로
“만나서 항의하는 게 낫다”
“만나서 항의하는 게 낫다”
정부가 ‘작은 회담’ 대신 ‘큰 회담’을 여는 쪽으로 최종 방침을 정했다. 북쪽의 장성급 회담 관련 연락장교 접촉 제의는 거부한 대신, 장관급 회담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장관급 회담은 6·15 합의 이행의 중심축이다. 이 회담이 닫히면 대화 통로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지난 5일 미사일을 쏜 직후, 정부 내에서도 부산에서 11일부터 하기로 돼 있던 제19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예정대로 개최할지를 두고는 이견이 있었다. 특히 발사 당일 아침 7시30분에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는 ‘군사적 측면’을 강조하는 국방부와 ‘국제 공조’를 강조하는 외교통상부가 회담 연기를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날 오전 11시부터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대화의 틀 속에서 강력한 항의’로 기조를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7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장관급 회담 개최를 재확인한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런 방침에 대해 “대화의 틀 속에서 분명하게 짚고, 행동은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긴장된 상황일수록 대화 통로가 확보돼야 한다”고 밝혔다. 6자 회담이 모멘텀을 상실한 상태에서 남북회담마저 중단되면 북한과 열려 있는 ‘투 트랙’이 모두 막혀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1994년 1차 핵위기 때의 ‘아픈’ 기억에서 교훈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하지 않겠다”며 남북관계의 단절을 자초했다. 그 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제네바 합의가 체결되면서 북한과 국제사회에는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지만, 남쪽 정부는 북한의 경수로 건설에 70%의 비용을 내고도 주도권을 상실한 것은 물론 4년 남짓 남북관계 냉각을 감수해야 했다. 98년 8월31일 1차 미사일 위기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대중 정부가 다음날 열린 통일관계장관회의에서 ‘우려 표명’과 동시에 ‘안보·협력 병행’이란 대북정책 추진 기조를 강조한 것도 1차 핵위기 때의 역사적 교훈과 맥이 닿아 있다. 당시 정부는 같은 해 11월18일로 잡혔던 금강산 관광도 정상대로 진행했다.
이번에도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에는 6자 회담 복귀를 촉구하면서 남북 대화 중단을 얘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한나라당이 6일 발표한 ‘북한 미사일 위기 사태에 대하여 국민에게 드리는 메시지’에서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면서도, 회담을 여는 걸 전제로 “7월11일 예정된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는 미사일 발사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 강력히 추궁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정부의 결정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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