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둘러 본 금강산 만물상 코스 삼선암 모습. 북한 핵실험 뒤 기로에 선 금강산 관광사업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붉은 단풍을 뽐내고 있다. 금강산/강재훈 선임기자
관광객들 “깨끗해서 다시 찾고파” 예찬
시민단체 ‘금강산 살리기’
시민단체 ‘금강산 살리기’
사진작가 이정수(61)씨에게 금강산은 ‘야외 스튜디오’다. 그는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래 80여 차례나 금강산을 누볐다. 그것도 2박3일 따위의 우수리는 뺀 횟수다.
봄·여름·가을·겨울 금강산의 사계를 앵글에 담아온 그도 “금강산을 다 파헤치려면 내 여생을 바쳐도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10일부터 15일까지 다시 5박6일동안 금강산을 찾은 그는 바위 하나, 계곡 하나 산봉우리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행여나 다시 못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금강산을 찾아가자’는 권유를 하고 다닌다. 애초부터 ‘금강산 전도사’였지만, 최근 어려움에 빠진 금강산 관광을 조금이나 일으켜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작은 소망이 그를 열렬 전도사로 변모시켰다.
어려운 금강산 살리기= 너도나도통일운동단체인 사단법인 ‘지우다우’(지금 우리가 다음 우리를)도 팔을 걷고 나섰다. 지우다우는 230여개 시민사회단체 및 대학 총학생회 등에 ‘금강산 찾아가자’ 캠페인을 제안했다. 현재 10여 곳이 동참 의사를 보내왔다고 지우다우는 밝혔다. 지우다우는 이번 제안을 받아들이는 단체나 기관과 함께 △금강산 방문객 백일장 △사진 콘테스트 △인터넷 금강산 팬클럽 결성 △평화선언문 릴레이 낭독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금강산 살리기 운동을 펼 생각이다.
지난 8년 동안 금강산 관광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엄혹한 위기는 없었다. 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금강산 관광객은 4만명 예약(10월)에서 2만5천명 정도로 줄었다. 핵실험 여파로 인한 심리적 영향은 줄었지만, 이제 단풍이 끝나지 않았겠냐는 생각과 지난주 말 폭우 등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추위가 닥치는 11월 비수기로 접어들면 금강산 관광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겨울방학 때 교사나 학생 연수에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매출 저하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현대아산 쪽은 보고 있다.
한번만 다녀오면=정치적인 입장이나 정세를 떠나, 금강산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은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한다. 지난해 1월과 올 6월 금강산을 갔다온 이군익(42·회사원)씨는 “금강산 관광을 중단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면서도 “최소한 금강산 안에 있는 순간만큼은 좋은 산에 와 있다는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것과 못 간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100만번째 금강산 관광객의 주인공이 됐던 권정숙(34)씨도 내년 봄께 다시 금강산을 찾을 생각이다. 지난해 관광을 함께 갔던 친정 부모들이 “내년에는 시댁 어른들과 함께 가자”고 미리 약속을 해뒀기 때문이다. 권씨는 “담배꽁초나 휴지조각 하나 없이 너무 깨끗하고, 오염된 곳이 없어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걸었다”며 “부모님들이 금강산에 갔다 온 얘기를 단골로 꺼낸다”고 말했다. 권씨는 “금강산에 100만번째 관광객 사진이 걸려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모님들이 더욱 가고 싶어한다”고 덧붙였다.
남북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을 지나면서 남다른 소회를 느끼기도 한다. 장교로 군복무를 했다는 이군익씨는 비무장지대와 통문을 통과하면서 “마음속으로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군생활을 하면서 비무장 지대를 실제로 옆에서 보면서 지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느낌이 묘했다”고 감상을 밝혔다. 4월에 금강산에 다녀왔다는 회사원 김아무개(27)씨도 “서울에서 6시간이나 걸려 금강산을 갔는데, 남북을 넘는 데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며 “50년간의 이념적 거리가 물리적 거리보다 얼마나 먼지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한다.
최근 사표를 제출한 이용철 방위사업청 차장도 퇴임 뒤 처음 할 일로 금강산 관광을 잡아놓았다. 그는 벌써 11월6일~7일 1박2일로 금강산 관광을 예약했다. 딸 아이가 첫돌을 맞은 99년에 배로 함께 간 적이 있지만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 아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볼 생각이라고 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금강산관광은 남북간 전면적 분쟁을 막는 안전판으로 결코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현직에 있다면 갈 수도 없거니와, 가서도 안 된다고 봤지만 이제 자유롭게 된 만큼, 그런 소신으로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에겐 북한의 핵실험 이후 금강산을 바라보는 심정이 다소 착잡하다. 고향인 황해도에 남동생 2명과 여동생 1명을 두고 한국전쟁 때 월남했다는 김철배(63)씨는 “두가지 엇갈리는 감정이 모두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행동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과 “이러다가는 금강산에서 동생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이 잘 되고, 이산가족도 계속 만나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뭐라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최근 사표를 제출한 이용철 방위사업청 차장도 퇴임 뒤 처음 할 일로 금강산 관광을 잡아놓았다. 그는 벌써 11월6일~7일 1박2일로 금강산 관광을 예약했다. 딸 아이가 첫돌을 맞은 99년에 배로 함께 간 적이 있지만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 아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볼 생각이라고 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금강산관광은 남북간 전면적 분쟁을 막는 안전판으로 결코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현직에 있다면 갈 수도 없거니와, 가서도 안 된다고 봤지만 이제 자유롭게 된 만큼, 그런 소신으로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에겐 북한의 핵실험 이후 금강산을 바라보는 심정이 다소 착잡하다. 고향인 황해도에 남동생 2명과 여동생 1명을 두고 한국전쟁 때 월남했다는 김철배(63)씨는 “두가지 엇갈리는 감정이 모두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행동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과 “이러다가는 금강산에서 동생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이 잘 되고, 이산가족도 계속 만나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뭐라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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