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 발전소 위한 핵연료 생산도 밝혀
오바마 무시정책에 양자대화 요구 ‘시위’
오바마 무시정책에 양자대화 요구 ‘시위’
북한이 북-미 직접 대화에 미온적인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꺼내들었다.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개발 등 모두 대량파괴무기(WMD)와 직접 관련된 군사적 수단들이다. 물론 북한은 29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고, 아직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는 징후도 포착되지 않았다. 하루이틀 사이에 벌어질 ‘실제상황'은 아니다. 일단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향해 대결과 협상 가운데 양자택일을 하라는, 말로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대미 압박이다. 미국 쪽이 조기에 북-미 고위급 직접 협상 등을 통해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북한의 핵실험 또는 장거리 미사일 추가 발사 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극단의 대치 국면으로 빨려들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 이후 처음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성명으로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이 더 커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지난 5일 장거리 로켓 발사 때 내걸었던 ‘평화적 위성 발사'라는 명분을 뒤로하고, 사거리가 6000㎞ 이상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직접 거론한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평양 건너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실제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5일 위성체를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실패했지만 장거리 로켓의 성능을 1998년보다 크게 향상시켰다는 데는 전문가들이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특히 탄두인 핵무기의 실험과, 운반체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한꺼번에 거론함으로써,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무기 소형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들도 있다.
경수로 발전소에 필요한 핵연료를 자체 생산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서두르겠다는 북한의 발표도 중대 사안이다. 기존의 플루토늄 추출 방식이 아닌,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개발을 추진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북한팀장은 “실제론 몇 년 이상 걸리겠지만, 어찌됐든 공개적으로 기술개발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HEUP)의 존재 여부는 제2차 북핵 위기의 핵심 쟁점이었다.
북한의 의도는 명백하다. 명목상으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의장성명 채택 및 안보리 산하 제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반발이지만, 실제론 2008년 하반기부터 영변 핵시설 검증 문제로 막혀 있는 정세를 돌파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내건 북한으로선 북-미 관계 개선의 속도를 내기 위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는 셈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오바마 정부가 외교정책 우선순위를 발표하며 북한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등 무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고, 북-미 양자대화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한 최근 흐름에 대한 반응”이라고 풀이했다.
이용인 이제훈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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