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차와 나란히 걸은 실세들
공식 의전서열과 상관없이 ‘핵심 후견인’ 암시
당·최고인민회의 대표해 김기남·최태복 나란히…
리영호·김정각 사이 김영춘…군부 노장파 배려
공식 의전서열과 상관없이 ‘핵심 후견인’ 암시
당·최고인민회의 대표해 김기남·최태복 나란히…
리영호·김정각 사이 김영춘…군부 노장파 배려
김정은→장성택→김기남→최태복, 리영호→김영춘→김정각→우동측(추정). 28일 치러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김 위원장의 영구차를 양옆에서 호위하며 걸은 북한 지도부 명단이다. 이들은 북한의 전 주민과 세계의 시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떠나는 김 위원장과 보내는 후계자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켰다. 이후 김 위원장이 떠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주도적으로 이끌 핵심 지휘부가 될 것임을 천명한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가장 의미심장한 대목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등장 순서다. 이들이 선 순서는 장 부위원장을 빼곤 대체로 국가장의위원회 서열과 일치한다. 영구차 오른쪽에 선 당·국가기관 쪽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8위,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당 비서 겸직)은 9위이고, 왼쪽에 선 군부 인물도 리영호 총참모장(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겸직)이 4위,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5위,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은 24위이다. 그런데 장 부위원장은 장의위에 19번째로 이름을 올렸지만, 김정은 부위원장 바로 뒤에 섰다. 장 부위원장이 공식 의전 서열과는 상관없이 김정은 체제의 핵심 후견인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장면으로 풀이된다. 장 부위원장은 지난 25일 <조선중앙텔레비전>에 대장 군복을 입고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군부까지 아우르는 김정은 체제 후견세력의 구심점 노릇을 할 것임을 암시한 바 있다.
이들이 각각 당·국가기관·군부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볼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잡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장성택 부위원장은 헌법상 최고영도기관인 국방위를, 김기남 비서는 당을, 최태복 의장은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를 각각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며 “또 군부에서도 리영호는 총참모부, 김영춘은 인민무력부, 김정각은 총정치국 등 군의 세 주요 조직을 각각 대표해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 위원장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던 당과 국방위, 군부의 대표 인물들이 김정은 체제 또한 충성으로 받들 것이라는 인상을 심기 위한 계산된 장면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기남 비서(선전 담당)는 당료로는 김국태 당 중앙위 검열위원(7위)에 이어 두번째로 장의위에 이름을 올린데다, 김정은 체제 선전을 총괄해온 최측근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군부에서 리영호와 김영춘, 김정각을 차례로 배치한 것을 두곤 리영호와 김정각 등 김정은의 친위세력을 앞세우는 동시에 친위세력에 밀린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김영춘 등 군부 노장파들까지 껴안고 가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군부뿐 아니라 노장파 세력의 충성까지 이미 확고히 확보하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방송에 살짝 스치듯 얼굴이 비친 마지막 군부 인사는 장의 서열 25위의 우동측 국가보위부 제1부부장인 것으로 당국은 추정했다. 남쪽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공안기관 책임자를 군부 핵심 4인방에 포함시킨 것은 김정은 체제가 공고한 권력기반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권력 엘리트와 주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 강화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분석된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이슈김정은의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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