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정치부장
휴머니즘의 척도를 대면
북한만 따로보기 어렵다
우리 안의 티끌은 어떤가
북한만 따로보기 어렵다
우리 안의 티끌은 어떤가
젊은 시절 한때 주체사상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수령론이란 게 있었다. 수령이 당과 인민의 중심이고, 수령에게 충성하는 게 최고의 사회적 삶이다, 뭐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주체사상의 핵심이 수령론이라는데, 내게는 영 아니었다. 수령이 완전무결해야 하는데, 세상에 그런 지도자는 없는 것 아닌가. 끌리는 구석도 없진 않았다. 대학 언저리에서 사회 진출을 고민하던 내게 자주적이고 자존감 있는 삶, 의리와 품성을 바탕으로 한 동지애적 연대, 뭐 이런 것은 생활의 좌표로 삼을 만했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29살 김정은의 등장을 보며 이십몇년 전 나를 헷갈리게 했던 수령론의 기형적 귀결이 결국 북한의 ‘김씨 조선’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3대 세습, 조선 왕조를 연상시키는 20대 지도자와 60·70대 부하들의 기묘한 조합. 3대 세습이 슈퍼파워 미국에 맞서 아슬아슬하게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북한 내 파워엘리트들의 고육지책일 테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남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외교는 외교이고, 내정은 내정이란 말은 맞다. 또 시대착오적인 김정은 체제가 안정돼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가 진전된다는 역설도 현실적으로 성립한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 체제의 몰인류성을 외면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 리비아·이집트·시리아·미얀마의 세습정권, 독재정권을 비난하면서 북한만 따로 보기 어렵다. 인류가 쌓아온 휴머니즘의 척도로 보면 북한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먹고사는 문제부터 정치적 기본권에 이르기까지 유엔 인권위든 어디든 공론에 부칠 수 있으면 부쳐야 할 참이다.
북한 체제 내부의 문제를 공론화할 거면 우리 안의 티끌부터 살펴야 한다.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을 걷어내는 것은 그 시작일 수 있다. 반북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을 폐기한다면 북한에도 그에 상응하는 요구를 할 수 있다. 체제 경쟁이 사실상 끝난 마당에 남한이 자신있게 냉전 잔재들을 청산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한때 주사파가 남한 지도층 곳곳에 침투했다고 ‘양치기 소년’같이 되뇌던 이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이가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다. ‘빠콩’이라 불린 이 양반 얘기가 어느 시점에선 100% 틀렸다고 하기 어렵다. 운동권의 대세가 주사파이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빠콩 선생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김정은 3대 세습으로 혹시나 남았을지 모를 북한에 대한 마지막 환상까지 깨졌다고. 하지만 북한에 대해 일말의 연민은 남아 있고, 그것은 같은 민족으로서 인지상정 아니냐고. 그 연민,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남북관계를 새롭게 출발해 보자고.
이명박 정부가 임기 1년여를 남겨 두고 뒤늦게 대북정책을 리셋하네 마네 하는 건 좀 애처롭다. 북한 입장에서 1년 남은 정권과 무슨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임기 말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제 갓 권좌에 오른 김정은 부위원장의 엇갈린 운명도 얄궂다. 만나서 뭔가를 도모하기엔 서로의 처지가 옹색하다. 남북한이 잘해보려면 미국이 훼방놓고, 미국이 괜찮으면 남북이 어그러지고, 한반도의 비극이다.
김정은 체제의 등장과 우연히 맞물렸지만, 올해 치러지는 총선과 대선을 통해 비극의 악순환을 끊고 남북관계를 제 궤도에 올리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앞선 두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현 정부의 ‘원칙있는 대북정책’이 발전적으로 지양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부터 먼저 크게 변하고, 북에도 변화를 요구하는 솔선수범, 측은지심의 자세에 기초한 새로운 대북정책을 기대한다.
백기철 정치부장 kcbaek@hani.co.kr
이슈김정은의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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