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콩밭 궤멸적 타격
169명 사망·수만명 집잃어
169명 사망·수만명 집잃어
집중호우가 마을을 강타한 지난 7월23일 밤, 평안남도 성천군 은곡 노동자지구에 사는 리향난씨는 속옷 차림으로 집을 빠져나왔다. 경황이 없던 탓에 리씨가 챙겨 나온 물건이라곤 김정일과 김일성의 초상화밖에 없었다. 리씨는 13일 현지를 찾은 <에이피>(AP) 통신에 “가족 사진과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 받은 메달을 가져나오지 못했다”며 울었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산으로 도망쳤다. 리씨는 “날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건물 벽이 무너지는 소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날이 밝았을 때 20년 동안 살았던 리씨의 집은 깨끗이 사라졌다.
지난 7월 말 북한의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를 강타한 집중호우로 169명이 숨지고, 수만명이 집을 잃었다. 대동강과 그 지류인 비류강이 만나는 성천군은 몇십년 만에 내린 집중호우를 견뎌내지 못했다. 북한적십자사는 이번 홍수로 성천군에서 20명, 이 가운데 은곡 지구에서만 7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성천군에서 집을 잃은 이재민은 5000명이나 된다.
통신은 이번 호우로 지난 5~6월 가뭄 때 큰 피해를 본 옥수수와 콩밭이 추수기를 한달 앞두고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유엔은 지난 6월 보고서에서 2400만명에 이르는 북한 인구의 3분의 2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심각한 기근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외신에선 이번 홍수의 충격으로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1990년대와 같은 대량 기근사태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주 북한에 긴급 식량지원을 시작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국제적십자사에서 보내준 긴급구호 물품에 의지하고 있다. 5살 된 딸을 품에 안은 박은수씨는 “당시 밖에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아이가 어찌나 겁이 났는지 ‘엄마 더 빨리 뛰라’며 울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적십자사가 보내온 담요 옆에 감자 자루, 늙은 호박이 담긴 녹색 바가지 등이 놓인 간이 부엌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박씨는 “어찌됐건 빨리 집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직 광부인 리웅호씨는 “남자들은 모두 도로 복구 작업에 나가 마을에 남은 것은 아줌마들뿐”이라고 마을의 사정을 전했다.
이번 홍수로 29만여명이 거주하는 성천군의 여러 마을은 유령 도시가 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평양 주재 유엔 상주조정관실(RCO)은 14일 보고서에서 현지 병원에 의약품이 부족해 설사와 급성호흡기 전염병을 앓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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