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경제 ‘병진노선’ 공식화
비핵화 전제 이미 허물어져
비핵화 전제 이미 허물어져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고, 핵과 경제건설의 ‘병진 노선’을 공식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6자 회담’의 틀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한·미 두 나라는 물론 의장국인 중국도 6자 회담을 강조해왔고, 최근엔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면전에서도 6자 회담을 거론했지만, 그가 귀국한 뒤 북한은 병진 노선만 강조했을 뿐 회담의 ‘ㅎ’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도발한 핵위기를 경수로를 비롯한 ‘대가’의 제공을 통해 그때그때 봉합해 왔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위협으로 시작된 1차 핵위기는 1994년 10월 미-북간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됐다. 합의의 큰 틀은 북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주변국들이 북한에 1000MW 크기의 경수로 2기를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의혹으로 제네바 합의가 파기된 뒤 시작된 2차 핵위기 때는 북한과 주변 5개국이 모인 6자회담이라는 다자틀이 마련됐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작성 과정에서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는 미국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수로 제공’이라는 단어를 삽입하는 데 성공한다. 즉, 핵을 포기하는 북한에게 주변국들이 경제개발을 위한 에너지(경수로)를 공급한다는 것이 지난 20년 동안 이어진 북핵 협상의 큰 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전제가 허물어지고 있다. 북한은 2월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한 뒤 3월30일 병진노선을 들고 나왔다. 이 노선의 물적 기반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가동이 예상되는 영변의 25~30MW급(열출력 기준으로는 100MW) 경수로다. 북한은 2010년 11월 이 경수로의 공사 현장과 경수로에 들어가는 연료 생산 농축시설인 원심분리기 2000여개를 북핵 전문가인 시그프리트 해커 박사에게 공개했다. 해커 박사는 귀국한 뒤 발표한 보고서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외국과 협상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독자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용 원자로가 성공적으로 가동되면 이보다 더 큰 원자로를 만들 것”이라는 북한 관리들의 발언을 소개한 바 있다.
이 영변 경수로는 이미 완공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2월29일 나온 미 의회 조사보고서는 “해커 박사의 증언과 위성 관찰 결과가 일치한다”고 평가했으며, 북한 정보 전문 사이트 ‘38노스’는 1일 최신 위성사진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에 이 경수로가 정상 가동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핵과 경수로를 맞바꾼다는 기존의 협상 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6자 회담이란 형식은 유지될 수도 있겠지만, 회담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에서 ‘확산 억지’로 조금씩 전환의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한반도 주변국들이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해야 하는 곤혹스런 상황을 맞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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