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은 남북 경제협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전망하고 있을까?
남북 경제협력이 남과 북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남북 경협에 대한 북쪽의 생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모든 자료들은 ‘남쪽의 시각’이라는 여과지에 한번 걸러진 것들이다. 그 여과지는 종종 북쪽의 행동을 ‘음모’나 ‘꿍꿍이’로 여기도록 만든다.
그 여과지를 통과하지 않은 북쪽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북쪽과 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 도쿄 조선대학교 박재훈 준교수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김지영 부국장을 통해 북쪽의 시각을 엿보도록 하자. 박 교수는 조선대학교 조선문제연구센터 현대조선연구실장으로, 2000년 이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등과 정기적인 연구 교류를 진행해 오고 있다. 김 부국장은 1992년부터 평양의 중단기 특파원으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 <조선신보> 평양지국장을 겸하고 있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 만난시련을 이겨내며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이것은 김정은 제1비서가 2012년 4월, 취임 뒤 북 인민들과 나눈 첫 약속으로서 앞으로 북의 국가건설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의 경제학자들은 1995년 이후의 북의 경제를 2012년까지와 그 이후라는 두 단계로 구분하여 본다. 즉 2012년까지의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단계’, 2013부터의 ‘강성대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단계’이다. 재해석한다면 2012년까지는 마이너스로부터 원래의 수준으로 회복시켜온 단계이고 2013년부터는 플러스로 나아가는 도약의 단계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은 자신의 힘으로 오늘의 현실을 마련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도약의 길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북이 취하는 경제정책은 그 변화가 확연하다. 경제발전을 위한 북의 당면한 주요 목표는 대내적으로는 경제의 관리운영 방식 개선과 지방경제 활성화이고, 대외적으로는 외자의 적극 이용을 중심으로 하는 다각적인 대외 경제관계의 구축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북의 정책 중에서 주목되는 것의 하나가 지난해 11월21일 공포된 ‘경제개발구’의 창설이다. 새로운 경제개발구는 기존의 ‘특구’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첫째로, 경제개발구의 창설이 국내 경제발전과 직접 연결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경제개발구법’은 제1조에서 자신의 사명을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구절은 여타의 ‘특구법’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지방경제 활성화라는 대내 과제와 투자 유치라는 대외 과제를 별개로 추진하는 종래의 입장을 크게 벗어나, 이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여 성과를 최대화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이다.
둘째로, 종래의 국가 주도의 중앙급 경제개발구와는 구별되는 지방급 경제개발구가 설정되어 지방행정부가 그 책정과 개발, 관리를 책임지는 체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공표된 13곳의 지방급 경제개발구는 지방이 가지는 인적 및 물적자원에 의거하여 지방경제 토대를 강화하고 지방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킬 것을 목적으로 설정되었다. 지방행정부에 외자 유치를 위한 사업 권한과 함께 그 계획과 개발, 관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권한을 넘긴 것은 이제까지 없는 대담하고 파격적인 조처이다.
셋째로, 관광산업만을 위한 특구 창설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경제개발구는 특정 산업에 특화하여 외자 유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북남간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한 ‘금강산관광특구’를 제외하고 관광업만을 목적으로 한 특구 창설은 못하게 하던 종래의 틀을 깨고 지방경제와 직접 연결되는 지방급 개발구에서도 이를 장려하게 된 것은 실리를 추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발표된 13곳 중 관광산업에 특화한 대상은 신평(황북), 만포(자강), 온성(함북)의 3곳이며 기타 2곳(평북, 량강)을 포함하면 5개도와 지역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고 있다.
북은 ‘강성대국의 전면적인 건설’을 위하여 이제까지의 틀을 크게 벗어나는 대담한 사고의 전환에 기초하여 크게 변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도 더욱 가시화될 것이 예상된다.
북의 이러한 변화를 ‘개혁·개방’과 연결지어 보는 시각에 대해서 필자는 회의적이다. 국가 경제가 반쪼각이 난 그 어려운 시기에도 ‘사회주의’, ‘자력갱생’이라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던 북이 오늘에 와서 그 원칙을 저버리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북이 보이고 있는 커다란 변화는 ‘변하지 않기 위한 변화’, ‘원칙을 지키기 위한 변화’로 보아야 옳다. 식민지 해방의 하늘 아래서 온 겨레의 꿈과 이상은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이었으며 거기에는 북과 남이 따로 없었다. 단지 북은 사회주의와 자력갱생으로 그것을 이루는 길을 택하였을 뿐이다. 제1비서는 선대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 그들이 못다 이룬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실현하기 위하여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북과 남의 경제는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의 관계에 있다. 해방 직후 모두가 꿈꾼 자주독립국가가 통일국가였던 것처럼 북이 바라보는 강성대국도 ‘통일강성대국’이다. 동북아지역에서 공백지대로 남아 있는 북 경제의 도약에 남 경제가 과감히 힘을 합침으로써 민족경제 공동체를 구축하고 70년간 못다 이룬 통일된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갈 절호의 기회가 지금 도래하고 있다.
박재훈 조선대학교 준교수
경제개발구
지난해 11월21일 북쪽이 외자 유치와 경제 개발을 목적으로 발표한 13개 특별구역. 기존 특구들은 중앙정부가 관장했던 데 비해 개발구는 지방정부가 관장한다. ‘경제개발구법’은 그보다 6개월 전인 지난해 5월 제정됐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북쪽이 외자 유치 등을 위해 법률 준비 등을 좀더 짜임새 있게 한 뒤 실행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