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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낯설다 했더니…이번 위기가 과거와 다른 4가지

등록 2015-08-24 15:30수정 2015-08-24 21:24

북한이 전날 남쪽에 포격을 한 뒤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8월21일 오후 서부전선 지역에 미군 차량이 정차돼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북한이 전날 남쪽에 포격을 한 뒤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8월21일 오후 서부전선 지역에 미군 차량이 정차돼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겨레21] 이슈추적
1. 유엔사가 나서서 위기관리 주도
2. 대결과 대화 시도가 동시에
3. 안보 위기가 경제 위기로
4. 동북아를 ‘힘의 각축장’으로 내몰아
8월4일의 북한 지뢰 도발에서 8월20일 포격 도발과 그에 이은 군의 대응사격으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위기 상황이 고조되고 있다. 집권 후반기로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통일대박론을 비전으로 새로운 성과를 모색하고 있고, 북한은 대외무역의 증가로 경제가 호전돼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기반이 다져질 수 있는 상황이다. 남북한 모두가 경제에 전념해야 할 상황에서 막대한 손실을 무릅쓰고 상대방에 대해 전쟁을 불사하는 강경한 군사적 대응을 다짐하는 상황으로 치닫는 이유가 뭘까? 이 위기에는 어떤 국가의 의지가 작용했으며, 무슨 전략적 목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북 평화협정론 vs 남 북한붕괴론

최근 한반도 상황을 보면 남한과 북한이 각기 다른 전략적 의도를 갖고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북한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현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통 큰 협상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해 3월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며 군사분계선 일원의 비무장지대(DMZ)에 무장병력을 대대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비무장지대로 투입된 북한군 병력 수는 어떤 날엔 5천 명을 넘기기도 했다. 이를 두고 그해 부임한 최윤희 합참의장은 인사청문회에서 “향후 북한의 도발은 지상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이후 우리 전방 경계초소(GP)에 접근하는 일명 ‘담력 훈련’을 수시로 실시하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일이 최근 올수록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지난 8월4일 지뢰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비무장지대를 중무장지대로 바꾸겠다는 의미이자 분쟁 예방 장치로서 비무장지대의 효력을 중지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아야 한다. 이런 도박이 정전협정의 근간을 흔들게 되면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 배경에 있다. 필자가 만난 한 탈북자는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간부들에게 내린 교시에서 ‘올해는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의 담판을 짓는 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의 공포정치가 지속되면서 북한 엘리트 계층의 해외 망명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30일 국가정보원을 비밀리에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 체제가 불안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7월20일의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도 “내년에 북한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갑작스럽게 통일이 될 수도 있으니 통일준비위 위원들께서 잘 준비하셔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근에 국회 국방위원을 만난 국방부의 핵심 관계자는 “김정은이 나이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막말을 자주 해서 엘리트 계층이 공포에 질리고 있다”며 역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중국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지역에 북한군을 증강하는 이상 동향이 감지돼 한-미 정보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역시 북한 체제 위기의 일환이라고 본 청와대와 국방부는 최근 북한의 도발이 북한 체제 내부의 위기를 외부 공격으로 해소시키려는 의도라고 본다.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북한에 섣불리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는 것보다 지속적인 압박을 구사해 통일의 기회를 포착하는 방향으로 사실상 대북정책이 흘러온 셈이다.

희망적 사고에 익숙한 남북한, 지구력 경쟁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식 큰판 벌이기나 남한식 북한 붕괴론은 아직 현실성이 희박한 ‘희망적 사고’의 수준이다. 그러나 그런 희망적 사고가 이제껏 남북한 정치권력으로 하여금 상대방을 극단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일종의 모르핀으로 작용했고 그 결과 남북한 관계는 경색돼왔다.

이번 지뢰 사건에 이은 남북한의 포격전으로 이어지는 전쟁 위기 국면은 상대방에 대한 무력시위의 수준을 점진적으로 증가시켜 적어도 1~2개월 동안 교착상태가 지속되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희망적 사고에 익숙한 남북한의 정치권력은 상대방이 파국으로 떨어지는 결말을 머릿속에 그리며 군사적 긴장을 오래 견디는 내구력 경쟁에 돌입했다. 이 군사적 긴장 국면을 오래 인내할 수 있는 쪽이 승자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단호한 대응을 하고 군사적 긴장을 불사하면 그리 오래지 않아 상대방이 굴복할 것이라는 기대다.

북한의 경우 8월20일에 “완전무장 상태의 준전시체제”를 선포했고, 한미는 지뢰 사건이 발표된 8월10일 전군 최고경계태세에 이어 20일에는 6군단 지역에 비상사태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이런 비상 조치는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장기 대치 국면에 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은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 무기의 사격준비태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후방에 있던 이동식 차량의 전진배치를 통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핵미사일의 공포도 일깨울 수 있다.

반면 한미는 대북감시태세인 워치콘을 격상시키고 지상군뿐만 아니라 북한을 정밀 타격하는 항공전력·해상전력을 주축으로 한 지·해·공 합동 전력을 과시함으로써 북한에 ‘지휘부 궤멸’이라는 공포를 강요할 것이다. 더불어 남과 북은 차제의 긴장 국면을 활용해 전투준비 시스템 전부를 한번 가동해보는 점검 기회로도 활용 중이다.

이번 전쟁 위기는 과거 20년 동안의 주요한 전쟁 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전쟁이 일어날 정도의 위기도 아닌 전방 지뢰 사건에 유엔군사령부가 위기관리의 모든 걸 떠맡았다는 점이다. 전쟁이 날 것 같았던 2010년 11월23일의 연평도 포격 사건 때는 “남북한의 문제”라며 아예 모른 체했던 유엔군사령부다. 당시 우리 합참과 월터 샤프 사령관 간에는 총 11번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쏘든지 말든지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미묘한 순서 변경, ‘응징’으로 선회?

그런데 이번 지뢰 사건의 경우 유엔사가 직접 조사하고 성명을 발표하고 대북 대화 제안을 했고 미 국무부가 이에 동조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유엔사의 조사 및 대북 성명 때문에 우리 정부의 공식 발표나 정부 성명이 그 이후에 나오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8월 초 지뢰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 늦었던 이유에 대해 “유엔군사령부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8월20일 포격전 이후에는 한미 공동국지도발계획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이런 현상은 한국군 단독으로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여지를 크게 잠식하면서 남북한 간의 극단적 충돌을 차단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유엔군사령부가 위기관리를 주도하니까 한국 정부의 존재감은 상당히 약화됐다.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의 전략적 공세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불편한 현실은 한국 정부가 당면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북한의 침략성을 고발하는 행보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 중국 방문으로 북한에 고립감을 강요하면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기선 제압을 시도할 것이다.

두 번째는 전쟁 위기와 대화가 동시에 시도되는 모순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지뢰 도발 직후인 8월5일부터 10일까지 우리 정부는 하루만 빼고 매일 북한에 고위급 대화를 제안했고, 광복절 축사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규탄보다 대화에 무게를 실었다. 유엔군사령부와 미 국무부는 8월10일 북한에 장성급 대화를 제안했다. 북한은 포격전이 벌어진 20일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김관진 안보실장에게 대화로 풀자는 서신을 보내왔다. 결국 적대적 행위자들 간에 공히 대화를 외치면서, 그 대화를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해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이중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안보 위기, 예전과 달리 주가 폭락으로 이어져

그렇다면 일정한 명분만 주어진다면 이 위기는 새로운 대화의 기회로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청와대·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8월20일 오후 5시 이전에 도착한 북한의 대화 서신에 대한 브리핑을 생략하고 그보다 늦게 도착한 북한 중앙군사위원회의 “48시간 이내 확성기 철거 통첩”을 주된 뉴스로 발표했다. 북한의 서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저녁 9시 뉴스가 막 종료되는 시점에야 브리핑됐다. 이 미묘한 순서 변경은 8월21일에 대북 강경 여론을 조성하는 데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보아야 한다. 지뢰 사건 당시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이었던 우리 정부가 20일 NSC 상임위 이후에는 응징 쪽으로 선회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세 번째는 이번 한반도 위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예전과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 1·2차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연평도 포격 당시에는 안보 위기가 주가 폭락이나 경제침체로 이어지지 않았다. 2013년 3~4월 전쟁 위기는 미국 방위산업체 주식이 폭등해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 안보 위기는 이전에 중국발 쇼크로 이미 흔들리고 있던 주식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 8월20일의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으로부터 철수할 명분을 찾고 있을 때 지금 위기 상황이 딱 맞는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점은 경제발전에 전념하는 박근혜 정부에 집권 이래 가장 어려운 시점이 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될 현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다시금 요구받게 될 것이다.

정책적 수단 없는 박근혜 정부, ‘역사의 고아’ 될 위험

네 번째는 이번 위기를 통해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일제히 힘을 앞세운 새로운 국제정치의 양상으로 간다는 점이다. 이번 한반도 위기는 아시아에 군사력을 집중하고 싶어 하는 미국, 대외적으로 힘을 과시하는 중국, 평화헌법의 껍질을 깨고 군사 대국으로 부상하는 일본, 동북아 정세에 새로운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 러시아를 모두 자극해 주변국이 힘을 과시하는 행태를 촉진하게 된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는 역대 한국 정부 중 주변국이 모두 힘을 과시하며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발흥시키는 무정부적인 국제정치의 무대에 선 최초의 정부가 될 것이다. 한반도 위기는 그러한 힘의 국제정치를 정착시키는 핵심적 요인이 된다.

이런 특징들을 감안할 때 이번 한반도 위기의 부정적 효과는 아주 멀리 이어지며 한국이 역사의 고아로 전락할지 모르는 고위험 사건이다. 이렇게 된 데는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표방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실행되지 못함으로써 현 위기를 타개할 정책적 수단이 고갈돼버린 결과다.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는 한국이 이번 북한의 위협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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