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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65년 기다림…“눈물도 안 나온다”며 아내는 눈가를 훔쳤다

등록 2015-10-20 19:36수정 2015-10-20 22:29

아내와 남편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쪽 채훈식(오른쪽)씨가 아내 이옥연씨와 만나 북에서 받은 훈장과 표창장을 앞에두고 이야기하며 오열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아내와 남편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쪽 채훈식(오른쪽)씨가 아내 이옥연씨와 만나 북에서 받은 훈장과 표창장을 앞에두고 이야기하며 오열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남북 96가족 530명 상봉 첫날
신혼 7개월 혼자 남겨진 이순규씨
65살 된 아들과 금강산으로
부자는 얼굴 맞대보고 “닮았다”

‘잠깐 다녀온다던 남편 돌아올세라’
이사 한번 못 간 이옥연씨
남편 손 내밀자 “늙었는데 잡으면 뭐해”
새신랑 얼굴엔 65년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남쪽에 홀로 떨어진 19살 곱던 새색시 머리엔 서리가 내렸다. 신혼 7개월째 엄마 뱃속에 있던 아들은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환갑을 넘겼다. 오인세(83)씨는 옛 기억을 떠올리는 듯 아내 이순규(85)씨한테 “가까이 다가앉으라”고 속삭였다. “65년 만에 만났는데, 그냥 그래요. 보고 싶었던 거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 고동색 한복을 차려입은 이씨는 수줍어했다. 오씨는 아내한테 미안해했다. “전쟁 때문에 그래, 할매, 나는 나는 말이야 정말 고생길이, 아무것도 몰랐단 말이야….” 북에서 새로 가족을 꾸린 미안함 탓인지 말끝이 흐려졌다. 20일 아침 강원도 속초에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마냥 기쁘고 들뜬다”며 엷은 미소를 짓던 이씨는 “눈물도 안 나온다”면서도 눈가를 훔쳤다. 이날 오후 3시께(이하 북쪽 시각) 북녘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는 눈물과 탄성으로 출렁였다. 남쪽에서 휴전선을 넘은 96가족 누구 하나 애달픈 사연 없는 이가 없었다.

아버지와 딸 남쪽 이정숙(68·오른쪽)씨가 20일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쪽 아버지 리흥종(88)씨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아버지와 딸 남쪽 이정숙(68·오른쪽)씨가 20일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쪽 아버지 리흥종(88)씨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 “다가앉으라” 65년 만에 곁에 앉은 부부 아들 오장균(65)씨는 ‘평생의 소원’을 풀었다. “아버지”라는 세 글자를 원 없이 불렀다. 큰절도 올렸다. 오인세씨는 아들을 보자마자 부둥켜안았다. 아들은 “아버지 있는 자식으로 당당히 살려고 노력했다”며 울었다. 부자는 손을 나란히 놓고 얼굴도 맞대보고 “닮았다”며 글썽였다. 오씨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지 5개월 만에 태어났다. 오인세씨는 충북 청원군 가덕리에서 신혼 7개월께 “훈련 한 열흘만 받으면 된다”며 나갔다. 임신한 아내가 “잘 다녀오시라”며 손 흔든 게 마지막이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아들을 악착같이 키워냈다. 전국을 떠돌며 낮엔 농사일, 밤엔 삯바느질로 살아냈다.

연분홍 저고리와 보라색 치마 차림의 이옥연(87)씨는 고개를 돌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이 아흔을 앞두고 눈앞에 섰다. 남편 채훈식(88)씨는 중절모가 벗겨질 정도로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기만 했다. 아들 채희양(66)씨는 “아버지, 제가 아들입니다”라며 오열했다. 남편이 손을 내밀었지만 이씨는 머뭇거렸다. “이제 늙었는데 잡으면 뭐해.” 채씨는 1950년 8월 “잠깐 다녀올게” 하고는 연락이 끊겼다. 남겨진 아내와 아들은 혹시나 돌아올까 경북 문경시 산양면 현리에서 지금껏 산다. 아버지는 헤어질 때 갓 돌 지난 아들의 얼굴을 못 믿긴다는 듯 어루만지며 흐느꼈다. “너희 어머니가 나 없이 혼자서… 아버지를 이해해다오… 나는 10년을 혼자 있다가, 통일이 언제 될지 몰라서….” 재혼이 미안한 것이다. 슬픔과 기쁨이, 또다시 기쁨과 슬픔이 거듭 교차하고 있었다.

■ 너나없이 부둥켜안고 어루만졌다 이산가족 남쪽 상봉단 96가족 389명은 이날 오후 1시께 금강산호텔에 도착했다. 이들은 오후 2시50분부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을 기다렸다. 기대와 긴장이 뒤범벅된 10여분의 적막을 가르며 북쪽 노래 ‘반갑습니다’가 흘러나왔다. 모두의 눈길이 입구로 쏠렸다. 북쪽 96가족 141명이 면회소에 들어섰다.

“저인가?” “아니야.” “오셨나봐!” “한번에 알아보시네.” “살았어, 살았어!” “누나 왔다, 누나 왔어!” “우리 아버지 맞아… 우리 아버지구나.” 짧은 외침과 긴 탄식이 엇갈리며 여기저기서 눈물을 뿌렸다. 너나없이 부둥켜안고 어루만졌다.

누나와 동생 남쪽 김복락(80·오른쪽)씨와 북쪽 누나 김점순(83)씨가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만나 두 손을 꼭 잡고 울먹이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누나와 동생 남쪽 김복락(80·오른쪽)씨와 북쪽 누나 김점순(83)씨가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만나 두 손을 꼭 잡고 울먹이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시간여 단체상봉의 마무리는 길고 어려웠다. 22일 금강산을 떠날 때까지 여러 차례 다시 만날 줄 알면서도 다시는 못 만날 사람처럼 손을 놓지 못했다. 해묵은 그리움과 미안함이 너무 커서다. 이들은 저녁 7시 다시 만났다. 남쪽이 면회소에 마련한 ‘환영만찬’ 자리다. 눈물바람 사이로 웃음이 도드라졌다.

이 자리에서 북쪽 상봉단장인 리충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북남 사이의 반목과 대결로 얻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며 “6·15(공동선언)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있다. 북남관계를 발전시켜 흩어진 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번 상봉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 구급차 타고 입북하기도 앞서 이산가족 남쪽 상봉단은 이날 오전 8시37분께(남쪽 시각) 버스 16대에 나눠 타고 동해선 도로를 거쳐 금강산으로 향했다. 구급차도 휴전선을 건넜다. 북쪽 김형환(83)씨의 남쪽 여동생 김순탁(77)씨는 천식이 악화돼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구급차에 탔다. 오빠 염진봉(84)씨를 만날 꿈에 부푼 염진례(83)씨도 허리 디스크 통증을 호소해 구급차로 이동했다. 북에 사는 의붓아들 리한식(80)씨를 만나려는 권오희(97)씨와, 여동생 김남동(83)씨를 만나려는 김남규(96)씨 등 가장 고령에 속하는 이들도 탈없이 북으로 향했다. 한편, 북쪽은 북쪽 출입사무소(CIQ)에서 1시간가량 이어진 입경 수속 과정에서 남쪽 기자단의 노트북 컴퓨터를 전수조사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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