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 방송 역사
1962년부터 48개 대형스피커 이용
‘비’ 예보 듣고 북한군 빨래 걷기도
1962년부터 48개 대형스피커 이용
‘비’ 예보 듣고 북한군 빨래 걷기도
한국전쟁 전 일부 지역에서 남북이 서로 비방하는 확성기 방송이 있었다는 일간지 보도가 전해온다. 전쟁 중에도 심리전으로 방송이 있었고 1959년 주한미군사령부가 확성기에 라디오를 연결해 방송하자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에 나섰다는 기록도 있다. 8일 재개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확성기 1기당 500W(와트)급 48개의 대형 스피커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 방식의 방송은 1962년 시작됐다.
확성기 ‘심리전’은 남북 화해 국면에서 ‘휴전’에 들어가기도 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서로 확성기 방송과 ‘삐라’ 살포를 그만두기로 약속했지만 73년 북한의 대남방송 재개로 약속이 깨졌다. 1988년 7·7선언 직후 노태우 정부가 남북 합의 없이 확성기 방송 중단 방침을 밝혔다. 다만 군이 반발하자 방송시간을 하루 5시간으로 줄이고 비방보다 홍보에 주력했다.
2004년 6월 남북 합의로 이 확성기가 철거되기까지,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1990년 10월 북쪽 장교의 제안으로 남북 병사들이 <고향의 봄>을 합창했고, “오늘 오후 비가 오니 빨래 걷으세요”란 방송을 듣고 북한군 부대에서 빨래를 걷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땐 방송이 일시 중단됐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이후로 이명박 정부는 5·24 대북 제재 조처에서 확성기 방송 재개 방침을 정하고 2004년 6월 합의로 철거된 방송시설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실제로 방송이 재개된 건 5년여 뒤인 지난해 8월10일이다. 8월4일 남쪽 군인 2명이 비무장지대에서 목함지뢰 폭발로 크게 다치자 방송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후 남북은 포격전까지 벌이며 전쟁 직전까지 갔고, ‘2+2 고위급 접촉’을 통해 8·25 남북 합의를 이뤄 대북 방송도 중단됐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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