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딱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4·13 총선을 닷새 앞둔 8일 금요일.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일과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오후 4시24분, 통일부의 긴급 기자회견 안내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습니다. 오후 5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및 입국’을 공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긴장감보다는 허탈감이 찾아들었습니다. 설마 했던 ‘북풍’이 다소 뜻밖의 방식으로 불어닥쳤다고 해야 할까요. 최근 8년간 설마가 현실이 돼버리는 데 이미 익숙하지(만) 말입니다. 그 뒤로 사나흘 제가 쓴 기사에는 ‘이례적’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집단 탈북’에서 확인된 사실만 뽑아보면 이렇습니다. 북한 지배인과 종업원 13명이 5일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류경’이라는 북한식당에서 빠져나옵니다. 이날 밤 육로로 상하이를 향합니다. 6일 새벽 이들은 항공편으로 말레이시아로 건너간 뒤 한국영사관에서 1회용 여행 증명서를 발급받아 7일 오전께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옵니다. 한국 정부는 8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 내용을 공개합니다.
8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통일부와 외교부까지 나서 들려준 설명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집단 탈북’의 이유로, 한 달 전 3월8일 정부가 발표한 대북 독자 제재 효과를 들었습니다. 북한식당 출입을 자제시켰더니 한 달 만에 영업이 어려워져서 노동자들이 도망나왔다는 겁니다. 개별 탈북도 공개하지 않던 정부가 집단 탈북까지 긴급히 언론에 털어놓은 이유는 더 가관입니다. 정부가 미리 공개하지 않으면 외신이 먼저 보도할까봐, 북한이 선수를 쳐서 ‘남조선의 납치’라고 주장할까봐 그랬다는 겁니다. 총선을 닷새 앞두고 말이죠. 수긍이 되시나요?
상식을 지닌 모든 기자들은 ‘국가정보원이 깊이 개입한 기획 탈북’이라고 의심했습니다(다른 매체의 실제 보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탈북 취재를 오래한 기자든, 실제 탈북자든, 남북관계 전문가든, 가족도 아닌 13명의 협의 탈출과 하루 만에 이뤄진 입국은 불가능할뿐더러 정부의 이례적인 긴급 발표 등은 비상식적이라고 누구나 공통적으로 여겼습니다. 기사가 나가자 이 분야 전문가들의 제보도 숱하게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정통한 정보를 바탕으로 취재가 진행 중입니다.
무엇보다 살펴봐야 할 것은 정부의 태도입니다. 최소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총선 직전 인터넷이나 에스엔에스(SNS)에 떠도는 ‘탈북자 급증’ 기사를 본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이건 거짓말입니다. 탈북자들은 장기간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정부가, ‘지난해 동기 대비’라는 이상한 잣대까지 고안해내면서 탈북자가 늘어났다고 주장하니 기막힐 따름입니다. ‘유관기관’들은 언론을 동원해 미리 기사를 쓰고 확인해주는 방식으로 ‘지난해 고위급 탈북자’들까지 한데 몰아 비빔밥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런 일련의 탈북몰이 뒤에는 청와대가 있었습니다. 긴급 발표와 고위급 탈북자 확인 등은 모두 청와대가 통일부·국방부 등에 지시한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총대를 메는 데 외교부가 빠진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집단 탈북을 발표하면서 탈북자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탈북 루트와 국가를 공개할 수 없다고 해놓고, 발표 당일 보수언론에 해당 식당을 흘린 곳이 ‘서슬퍼런 핵심기관’이라는 제보에도 주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사리사욕을 중요하게 여긴 이율배반적 태도입니다.
특히 속상한 일은, 끝장을 보고도 더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찢어발겨지는 남북관계입니다. 실은 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 남북 분단에 있습니다. 남북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세력들은 분단에 기생합니다. 개성공단 폐쇄에 이어 기획성 짙은 이번 집단 탈북 문제로 남북은 더욱 벌어지게 생겼습니다. 북은 더욱 공세적으로 나오고 남은 이제 묵비에 가깝게 방어할 것입니다. 남쪽이 ‘집단 탈북’이라 설명하고 북쪽이 ‘유인 납치’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만나서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김진철 정치에디터석 통일외교팀 기자 nowhere@hani.co.kr
김진철 정치에디터석 통일외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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