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9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9월23일 제71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평화 애호 유엔 회원국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문제제기했다. 1991년 9월17일 남과 북이 나란히 유엔 회원국이 된 이래, 한국 정부가 유엔총회에서 북한의 회원국 자격을 공식 문제삼은 건 처음이다. 앞서 북한의 4차 핵실험(1월6일) 직후인 2월15일, 오준 유엔대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유엔 헌장의 원칙과 목적 존중’을 주제로 한 공개토의에서 “북한의 지속적인 안보리 결의 위반은 회원국으로서의 자격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라고 따진 적이 있다. “북한 4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대응”(2월7일)이라는 외교부 문서의 논리를 활용하라는 ‘훈령’에 따른 것이다. 이 문서엔 “북한은 거대한 대량파괴무기(WMD) 개발 기구”라며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자격까지 의문시하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적혀 있다. 윤 장관은 이를 유엔총회에서 공식화했고, 요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북한과 외교관계 단절·축소를 읍소하고 있다.
질문은 네가지다. 첫째, 북한 축출은 가능한가? 둘째, 선례는 있나? 셋째, 박근혜 정부는 말을 행동으로 옮길까? 넷째,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나?
첫째, 유엔 헌장에 회원국 “제명”(6조) 또는 “권리와 특권의 정지”(5조) 규정이 있다. 둘 다 “안보리의 권고에 따라 총회”가 결정할 수 있다. 뒤집으면, 안보리 상임이사국(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중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둘째, 1945년 유엔 창설 이래 제명된 회원국은 없다. ‘자격정지’는 사정이 복잡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탓에 1974~1994년 21년간 회원국 자격이 ‘사실상 정지’됐다. 1974년 9월30일 제29차 유엔총회는 남아공 유엔 대표단의 자격을 거부하라고 권고한 ‘신임장심사위원회’ 보고서를 ‘결의 3206호’로 채택했다. 그러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영·프 3국의 거부권 행사로 ‘남아공 자격정지’안은 부결됐다. 그러자 총회 의장은 그해 11월12일 ‘결의 3206호’를 근거로 “총회가 남아공 대표단의 회의 참여를 거부한다”고 선언했고, 총회 전체회의 표결로 가결(찬 91, 반 22, 기권 19표)됐다. ‘안보리 권고’ 없이 회원국 자격을 실질적으로 정지시킨 셈인데, 그 근거로 ‘유엔총회 회의운영규정’이 원용됐다.
요약하면 이렇다. 제명은 중·러의 거부권 탓에 불가능하다. ‘자격정지’ 는 중·러의 반대를 우회할 방법이 있긴 하다.
셋째, 박근혜 정부는 ‘북한 쫓아내기’에 외교력을 쏟아부을까? 외교부 당국자는 7일 “정부는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에 문제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제기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의 한 중견 간부는 “윤 장관의 발언은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각심이 무뎌지지 않게 하려는 ‘택티컬한(전술적인) 고려’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행동’보다는 ‘말의 효과’를 노린 충격 요법이라는 얘기다. 남북관계의 근본에 닿은 전략적 사안을 ‘전술적 타격 수단’으로 써먹는 경박함이라니.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박근혜 정부가 애쓰는 ‘제재 다걸기’든, 다수 전문가가 권하는 ‘제재와 대화·협상의 병행’이든, 북한을 다자주의의 울타리(유엔)에 묶어놔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자격정지’는, 북한이 다자적 보호막(권리)이자 굴레(의무)인 유엔의 울타리를 벗어나 폭주할 빌미만 늘려줄 위험이 크다.
더구나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의 ‘1등 공신’은 유엔 회원국 ‘자격정지’(제재)가 아니다. 그에 더해 탈냉전에 따른 안보 환경의 변화, 외면할 수 없는 정치적 실체로 떠오른 넬슨 만델라를 축으로 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존재, ‘흑인한테 핵무기를 넘기느니 없애는 게 낫다’는 클레르크 남아공 백인 정부의 전략적 판단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북핵 문제’도 안팎의 상황 변화를 포착·견인하고 ‘공존’을 도모하는 전략적 결단이 없이는 풀 수 없는 난제다.
이제훈 통일외교팀장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