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앞줄 왼쪽 셋째)이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5돌 생일(광명성절)인 16일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숨진 지 16일로 사흘이 지났지만, 핵심 의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동남아 국적의 용의자들을 하나 둘 체포하며 수사의 고삐를 죄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꽤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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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이번 사건은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아직 딱부러지게 북한 소행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한국 정부도 북한의 소행이라고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16일 처음으로 아미드 자히드 부총리의 입을 빌려 살해된 김정남의 신원을 공식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자히드 부총리는 이 사건 이후 “북한-말레이시아의 관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의 소행이 확실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북한 정부가 말레이시아 영토에서 주권 침해적 범죄 행위를 저지른 사안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외교적 항의가 불가피하다.
한국 정부도 북한 소행임을 공식 확인하고 있지 않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이번 사건의 정황과 배경, 범행 주체 등에 대해 “조사 중인 사항”이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같은 날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여성 용의자들이 “수법으로 봐서 북한 공작원일 것”이라고 추정했을 뿐이다. 북한의 김정남 살해 배경에 대해서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편집광적 성격”으로만 돌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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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범행 장소가 말레이시아일까 말레이시아는 남·북 동시 수교국으로 남북 모두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 노선을 견지해와 북한과 인연이 깊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교역 관계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외교부의 통계를 보면 2013년 북한-말레이시아의 교역액은 110만달러다. 말레이시아는 2004년 용천 폭발 사고, 2007년 북한 홍수 피해 때도 북의 지원 요청에 응했다. 북한도 말레이시아를 남북간, 또는 북-미간 각종 막후 협상의 장소로 활용하곤 했다. 북한이 왜 이런 나라에서 자칫 외교적 논란이 될 범죄를 감행했을까 의문이다. 국제적 고립을 겪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말레이시아는 그나마 ‘우호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말레이시아는 남한과도 긴밀한 관계에 있다. 특히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이른바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때는 지배인과 종업원 등 13명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데 적극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말레이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말레이시아 특수경찰로 보이는 30여명”이 호위해 줬다는 게 남성 지배인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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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혈통 핏줄의 첫 암살 북한에서 사실상 김일성 주석의 핏줄을 의미하는 ‘백두혈통’이 암살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북한 정권이 3대 세습을 거쳐 내려오면서 권력승계를 둘러싼 암투는 전례 없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백두혈통의 경우, 이른바 ‘곁가지’들이 권력 주변부로 밀려나기는 했어도 생명의 위협을 받진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애초 1970년대 작은 아버지 김영주와 후계자 지위를 다퉜다. 그러나 김영주는 김 위원장 집권 시절에도 건재했다. 지난 2015년 7월 북한 방송은 김영주가 95살의 노구를 이끌고 지방선거에서 투표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또 김정일 위원장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도 해외로 겉돌았지만 현재 체코 주재 대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2013년 12월 숙청됐지만, 장성택은 김 주석의 피를 물려받은 직계 후손이 아니다. 김 주석의 딸인 김경희는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병수 김진철 김지은 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