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3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경찰청에서 노르 라싯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청 차장이 김정남 피살 이후 처음으로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쿠알라룸푸르/EPA 연합뉴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 살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은 19일 북한 국적의 남성 용의자 4명이 김정남 피살 직후 해외로 출국했으며, 신원 미상의 남성 용의자 2명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앞서 17일 북한 국적의 용의자 리정철(47)을 체포하고, 북한 국적의 참고인 1명도 신병을 확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남 살해 사건의 용의자 대부분이 북한 출신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건 배후에 북한 당국이 있다는 의혹은 한층 짙어졌다.
노르 라싯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청 차장은 19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김정남 살해 사건과 관련해 현재 용의자 6명을 추적 중이며, 이들 가운데 리지현(32), 홍송학(34), 오종길(55), 리재남(57) 등 4명이 북한 국적으로 확인됐다며 이들의 신원을 공개했다. 그는 또 이번 사건과 관련해 또다른 2명의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이들도 북한 국적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밖에 북한 국적자인 리지우(30)의 신병을 확보해 참고인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브라힘 차장은 신원이 확인된 용의자 4명은 지난 13일 김정남 피살 직후 모두 출국했다며, 용의자들 가운데 외교관 여권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이 어느 나라로 출국했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인터폴 및 관련 국가들과 협력해 행방을 쫓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건 배후가 북한이냐, 용의자들이 북한 정보기관 소속이냐’는 질문에 “(남성) 용의자들이 모두 북한 국적자임은 확인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은 현시점에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브라힘 차장은 김정남의 사망 원인에 대해선 “(부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 정확히 말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또 김정남의 시신 인도에 대해 “가족과 친지가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 당국이 시신을 확인하기 전에 유족이 시신을 (먼저) 확인해야만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브라힘 차장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의 여성 용의자 2명이 ‘장난인 줄 알고 가담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조사 중인 사안으로 모든 사실을 파악한 뒤에 밝히겠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이번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핵심 용의자들이 모두 국외로 도주했다고 확인함에 따라, 이번 사건 수사는 장기화되면서 전모를 밝히는 데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김정남 피살 사건 관련 말레이시아 수사 발표에 대한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앞으로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겠지만 우리 정부는 피살자가 여러 정보와 정황상 김정남이 확실하다고 보며, 용의자 5명이 북한 국적자임을 볼 때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쿠알라룸푸르/박수지 기자,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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