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전병헌 정무수석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하려는 국방부의 시도를 확인하고 “법령에 따른 적정한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사드의 정식 배치가 애초 계획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환경영향평가 회피’ 방안을 누구의 지시로 마련했는지에 대한 조사가 어디까지 향할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만 받으려 편법 동원
환경영향평가 실시 문제가 원점에서 재검토되면, 애초 박근혜 정부에서 한-미가 합의했던 연내 사드 배치 완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흔히 개발 사업은 ‘전략 환경영향평가→사업승인 공고→토지 취득→설계→환경영향평가(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공사 착공’의 절차를 거친다. 현재 국방부는 경북 성주의 사드 부지에서 ‘전략 환경영향평가’를 생략한 채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만 받고 있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는 6개월 정도면 되지만 ‘전략 환경영향평가’와 정상적인 ‘환경영향평가’를 모두 받게 되면 최대 2년까지 걸린다.
청와대 조사를 통해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우회하기 위해 편법은 물론 사실을 은폐·호도하려 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국방부가 사드 배치를 위해 주한미군에 공여하려 계획했던 부지 면적은 70만㎡에 이른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25일 작성한 보고서에서, 이 가운데 우선 1단계로 32만8779㎡만 공여하고, 나머지 37만㎡는 2단계로 공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국방부는 그동안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에 “부지 규모가 33만㎡ 미만이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법상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실시 대상”이라고 방어막을 쳐왔다.
국방부가 이런 편법을 동원한 것은 촉박한 ‘연내 사드 배치’ 일정을 맞추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상적인 환경영향평가는 통상 1년 정도 걸리는 반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는 6개월 정도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는 롯데 쪽으로부터 사드 부지인 경북 성주골프장을 취득하기 두 달 전인 지난해 12월 서둘러 환경영향평가 업체를 선정했다.
■ 전체 70만㎡ 부지 2단계 쪼개기 은폐 의혹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하기 위해 70만㎡의 전체 부지를 기형적으로 나누기까지 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선정된 부지 32만8779㎡의 모양을 보면, 거꾸로 된 유(U)자형이다. 거꾸로 된 U자형 부지의 가운데 부분 부지를 제외하기 위해 기형적으로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국방부는 그동안 부지 공여 면적이 32만8779㎡라고 밝혀왔다. 총 공여 면적이 70만㎡란 사실과, 이를 1, 2단계로 나눠 공여할 계획이란 사실이 처음 알려져 조직적 은폐 의혹이 제기된다.
총 공여 면적 70만㎡는 전체 성주골프장 148만㎡의 절반에 해당하는 넓은 면적이다. 왜 이런 넓은 부지가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이는 애초 한·미가 사드를 배치하기로 했던 인근 성산포대 면적 11만여㎡의 7배 가까이 되는 면적이다. 국방부가 그동안 “사드 배치에 직접 필요한 면적은 10만㎡ 미만이고, 주변 완충구역을 포함해 32만㎡가 필요하다”고 밝혀온 것과도 상충된다.
■ 환경영향평가 회피, 누가 지시했나?
문재인 대통령의 이날 ‘적법한 환경영향평가 절차 진행’ 지시엔 앞으로 실시할 구체적인 환경영향평가가 어떤 것인지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러나 공여 부지 면적이 33만㎡를 넘어서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소규모가 아닌 정상적인 환경영향평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문 대통령은 이날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하기 위한 시도가 어떤 경위로 이뤄졌으며, 누가 지시했는지 추가로 경위를 파악하라”고 지시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등에게까지 조사 여파가 미칠지도 주목된다.
박병수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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