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정치에디터석 통일외교팀장 suh@hani.co.kr
취임 초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전망엔 ‘달빛정책’(Moonshine)이라는 조어가 따라붙었다. 문 대통령의 영문 이름(Moon·달)을 빗댄 작명이고, 여기엔 문 대통령의 정책 노선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Sunshine)을 따를 것이란 전망도 담겨 있었다.
이제 새 정부 출범 한달이 됐다. 그러나 아직 남북관계엔 ‘달빛’이 흐릿하다.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접촉을 잇따라 승인하는 등 남북관계 회복을 조심스럽게 모색해왔다.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 등에서 먼저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보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북한의 호응이 없다. 북한은 6·15 남북 공동행사 제안을 제외하곤 남쪽 민간단체의 접촉 요청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어렵게 이뤄진 6·15 공동행사 논의조차 성과를 내지 못하고, 남북 분산 개최로 결말을 맺었다. 당분간 민간교류는 동력을 찾기 어려운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8일 오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남북간 군사대립 구도도 변함이 없다. 북한은 새 정부 출범 이후에만 탄도·순항·대지·대함 등 다양한 미사일을 다섯차례나 시험발사했다.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2일 새 제재결의안 2356호를 통과시키는 등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는 분위기이고, 남쪽 정부도 문 대통령이 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소집해 “국가 안보와 국민 안위에 대해 한발짝도 물러서거나 양보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는 등 강경 기조다.
이런 엇박자는 남북간 초반 기세싸움으로 이해된다. 과거에도 남북관계는 남한의 정권교체 직후 조정기를 맞곤 했다. 서로 새로운 상대의 의중을 떠보는 탐색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북한은 김대중 정부 때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전까지는 남북대화에 소극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초반에도 남북관계는 어려운 냉각기를 거쳤다. 이번 정부에서 벌어지는 신경전도 이런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 같지 않다.
정부는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쉬운 것부터 하자’는 입장이다. 남북간 부담이 적은 민간교류에서 시작해서 무거운 정치·군사 협력으로 확대해가자는 접근법이다. 5·24 조치나 유엔 안보리 결의 등 국내외 대북제재가 여전한 현실을 우회하려는 고육책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동안 역대 남쪽 정부가 늘 취한 전통 노선이기도 하다. 북한은 거꾸로 나왔다. 북한의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6일 개인 필명 논평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여 북남관계가 저절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문제는 누가 집권하였는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근본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본문제’의 내용은 주한미군 철수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북한이 민감한 이슈를 근본문제로 던져놓고 남쪽 당국의 반응을 떠보는 수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남북이 모두 전통적인 ‘응수타진’ 문법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이전에 없던 불확실성의 변수도 있다. 과거 좋았던 시절은 모두 김정일 체제 때다. 김정은 체제에선 남북대화의 경험이 별로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급 접촉이 몇차례 이뤄졌지만, 지속되지 못했고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안 됐다. 현재 남쪽에는 2011년 12월 집권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 없다. 북한이 예상치 못한 남북관계를 들고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