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4일 실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 발사를 통해 미사일 탄두부의 대기권 재진입 및 단 분리 기술을 시험했다고 <노동신문>이 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정의길 국제에디터석 선임기자 Egil@hani.co.kr
1962년 10월 전세계를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와 그 해결은 한국에서 흔히 ‘안보위기는 비타협적으로 단호히 대응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존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핵 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단호하게 대응하자, 소련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쿠바에 설치하려던 계획을 접고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이 단호히 대응해서 해결된 게 아니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 한 미국과 소련이 타협과 양보를 했기 때문에 해결됐다. 소련은 일방적으로 쿠바에서 미사일 설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소련에 쿠바 침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소련을 겨냥해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했던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미국은 그 이전까지 피그스만 침공 작전 등을 통해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정권을 타도하려 했고, 카스트로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다. 미국의 이런 대쿠바 적대 정책은 쿠바 미사일 위기의 근본적 배경이었다. 카스트로는 “만약 미국이 쿠바 혁명을 제거하려고 몰두하지 않았다면, 10월 위기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쿠바 침공 포기와 카스트로 정권 인정은 위기 해결의 전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쿠바 위기의 또 다른 배경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심각한 핵전력 불균형이었다. 미국이 쿠바의 소련 미사일 설치에 느꼈던 위협을 소련은 당시 미국으로부터 항상적으로 받고 있었다. 당시 두 나라가 서로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등 운반체에 실린 핵탄두 보유 비율은 17 대 1로 미국이 압도적이었다. 더구나 미국은 소련과 접경한 터키 등지에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었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한다 해도 이런 전력 불균형이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소련은 적어도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의 수를 2~3배까지 늘릴 수 있었다. 니키타 흐루쇼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은 우리나라를 군사기지로 포위하고 핵무기로 위협하다가, 이제 자신들을 겨눈 적의 미사일을 대면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됐다”며 “우리는 그들 자신이 하던 처방을 그들에게 조금 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소련에 쿠바 미사일 위기 직전에 터키 등에 배치했던 주피터 미사일 철수를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합참 등 미 군부는 쿠바 침공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소련은 이미 쿠바에 파견된 소련군에 9개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해, 미국이 침공하면 현장 지휘관이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국방장관은 “만약 미국이 침공했다면, 핵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99%였다”고 말했다.
케네디 대통령 등 수뇌부가 이런 참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쿠바 위기가 터지자마자 상대의 입장에 서보는 합리적 추론을 했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은 상대방과 상호 의존적으로 이뤄진다는 게임이론의 대가인 토머스 셸링 등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서 소련의 입장에 서보는 추론과 해결책을 모색했다. 나중에 노벨상을 수상한 셸링은 “때로는 타협이 전면적인 승리를 추구하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격화되는 북한 핵위기를 해결하려면 쿠바 핵위기 접근책이 원용돼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현실주의 주류 진영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인사인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소련에 대해 펼쳤던 방식을 북한 핵위기 해결책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체제 인정과 정권교체 포기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 △한국 내 군사력 구조 변경에서 더 나아가 북한의 핵 운반체제 장거리화 포기를 조건으로 현 상태에서 북한의 핵을 동결하고 보장하는 방안까지 제안했다.
게이츠의 이런 제안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게 된 배경을 해소하려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내에서 커지는 이런 목소리는 미국이 북핵 위기 해결자로 지목하는 중국이 줄기차게 제안하는 ‘쌍중단’(북한의 핵 미사일 발사와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 동시 추진) 주장과도 맥락이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미 북한 체제 인정과 정권교체 포기를 수차례나 공식 약속했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말하고 있다.
이제는 쿠바 미사일 위기 해법이 한반도에서도 작동할 조건이 무르익은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