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환경협상이 길어져 폐쇄된 지 7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미군 땅’으로 남아 있는 강원도 원주시의 미군기지 ‘캠프 롱’에 대해 한국 정부가 미군에 오염정화 요구를 사실상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미군기지 반환 사례가 될 캠프 롱 34만㎡(10만평) 터의 정화 비용을 한국이 ‘덤터기’를 쓸 가능성도 커졌다.
최근 주둔군지위협정(소파) 환경분과위원회 한국 쪽 위원장인 김지연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8월 중으로 추진 중인) 미군과 다음 회의 때 원주 캠프 롱에 대한 환경 협의를 ‘미합의’ 상태로 외교부 주관 ‘특별합동위원회’로 넘기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캠프 롱을 둘러싼 한-미 환경협상이 미합의 상태로 중단되면, 기지는 특별합동위를 거쳐 사실상 미군의 정화 조처 없이 오염된 채 반환되는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3월 반환된 경기도 동두천 캠프 캐슬, 부산 디아르엠오(DRMO·재활용 및 매각처리소)의 사례가 딱 그랬다.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의 미군기지 ‘캠프 롱’은 지난 2010년 폐쇄된 뒤 미군은 모두 떠났고 34만㎡(10만평) 부지에 미군이 고용한 경비원만 남아 한국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캠프 롱’ 정문 풍경. 원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정부가 환경협의를 미합의 상태로 중단하는 이유는 미군이 거부하는 상황에서 계속 미군에 오염정화 책임을 묻기보다 ‘빠른 반환 추진’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2010년 미군이 모두 떠나고 폐쇄된 캠프 롱 터에 2012년부터 문화체육공원 건설 계획을 추진해온 원주시는 중앙정부에 최근까지 70여차례나 조속 반환을 건의해왔다. 원주시는 국방부에 토지매매 협약대금 665억원도 완납한 상태다. 김지연 과장은 “전례로 봤을때 특별합동위와 국방부 주관 시설분과위를 거치며 빠른 반환을 원하는 지역사회 의견이 더해져 최종 반환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2009년 한-미가 합의한 ‘공동환경평가절차’(JEAP)에 따르면 미군기지 반환은 ‘(국방부 주관) 반환개시 결정→환경분과위(환경부 주관) 협의→시설구역분과위 반환 건의→합동위(외교부) 반환 승인’ 순서로 진행된다. 하지만 한-미가 환경협상에서 합의하지 못할 경우 환경분과위가 특별합동위(외교부 주관)로 논의를 넘겨 반환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환경협의 때와 달리 미군에 오염 책임을 묻기보다는 반환 절차 진행에 무게중심을 두게 된다.
미군기지 반환 절차로 2009년 확립된 한미 공동환경평가절차(JEAP). 환경부가 주도하는 환경협상 미합의시 특별합동위로 넘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특별합동위로 넘겨져 처리된 캠프 캐슬과 부산 디아르엠오 기지는 실제 미군의 정화 조처 없이 반환이 이뤄졌다. 미군이 떠난 뒤 캠프 캐슬 20만㎡(6만평) 터에 대해 국방부는 196억원의 정화사업 발주 공고를 냈고, 68억원의 정화 비용이 예상되는 부산 디아르엠오(8800평)의 경우엔 국방부와 국토교통부가 정화 책임을 미루며 3년째 오염을 방치 중이다.
캠프 캐슬과 부산 디아르엠오 전철을 밟고 있는 캠프 롱 정화 비용도 결국 한국 정부가 덤터기 쓰게 될 전망이다. 캠프 롱은 2001년 기지 밖으로 기름이 새어 나오는 사고가 발생해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정화 비용 2억3000만원을 원주시에 배상하기도 했다. 기지 내부의 오염 정도와 정화 예상 비용이 얼마나 될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정화 비용 덤터기를 써 국민 부담이 늘어도 각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빠른 반환이 유리한 ‘모순된 상황’이다. 현재 “캠프 롱 연내 반환이 거의 확실하다”고 밝히고 있는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입장에서는 미군기지 이전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어 좋고, 환경부는 길어지는 환경협의로 인한 부담을 덜 수 있다. 빨리 토지를 받아 활용하고픈 지자체 입장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매번 이런 상황이 맞물리니 서울 용산 미군기지, 동두천 캠프 호비 등 앞으로 남은 22개 미군기지의 반환 절차에 있어서도 원주 캠프 롱이 또 하나의 ‘선례’로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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