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1월29일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 발사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9일 ‘화성-15’형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함께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핵전력은 절대 파괴력의 핵폭탄과 이를 목표물까지 실어 나를 운반 수단이 한 세트로 구성돼 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이 둘을 동시에 손에 넣었다는 자기 과시다.
이미 북한은 지난 9월 6차 핵실험까지 진행했다. 애초 국방부는 50㏏(티엔티 환산량)으로 평가했지만, 외국에선 최대 1Mt(1000㏏)에 이를 것이란 추정치도 나왔다. 수소폭탄 실험이었다는 데는 거의 이론이 없다. 이번에 발사한 화성-15형 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1만3000㎞ 이상이다. 미국 어느 곳이든 타격할 수 있다. 수소폭탄+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세트의 완비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핵 강대국들은 통상 전략 핵무기를 크게 세 축으로 운용한다. 항공 전력과 수중 전력,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력이다. B-2나 B-52 같은 중폭격기에서는 공대지미사일(ALCM)을, 핵잠수함에서는 트라이던트 잠대지미사일(SLBM)을, 지하의 사일로에서는 미니트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다. 적의 선제공격에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아 보복 공격할 능력을 갖추기 위한 핵 운용수단의 다양화다. 이에 비하면 북한의 성취는 보잘것없어 보인다. 북한엔 핵 투발을 보장할 항공기도, 핵잠수함도 없다. 탄도미사일뿐이다. 핵 강대국 기준으로 보면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에서 옛소련제 스커드-B를 들여와 역설계해 개발했다고 한다. 사거리 300㎞짜리였다. 30여년 동안 사거리를 40배 이상 늘리며 미국을 직접 위협할 능력을 갖췄다. 북한의 핵무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5㎿ 원자로가 영변에 완공된 건 1986년이었다. 마찬가지로 30여년 만에 최대 파괴력 1Mt의 수소폭탄을 만들었다.
이제 관심은 북한의 향후 행보다.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이제 더는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안 하는 것일까. 논리적으로는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실험이니 시험 발사니 하는 것들은 완성 전에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도 그럴 것이라는 속단은 금물이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엔 정치적 함의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올 1월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 발사 준비사업이 마감 단계에 이르렀다”고 했고, 지난 9월 6차 핵실험 땐 “국가 핵무력 완성의 완결 단계”라고 했다. 최고권력자의 발언을 빈말로 만들 순 없으니, 뭔가 보여줘야 한다. 또 제재와 봉쇄가 강화되는 어려운 시기에 대내적으로는 주민 결속을 위한 상징이, 대외적으로는 “그래도 내 갈 길을 간다”는 메시지가 필요했을 수 있다. 어쩌면 대결에서 대화로 국면 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기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의 향배, 북한의 대응 방식 등 여러 변수가 얽힌 고차 방정식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미국처럼 핵 운반 수단 다양화를 완벽하게 갖출 능력은 없다. 특히 항공전력 확보는 경제난에 기술도 부족해서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수중 전력은 추진 중인 게 있다. 북한은 지난해 4월과 8월 에스엘비엠 ‘북극성’의 로켓엔진 점화 실험을 공개한 바 있다. 또 현재 신포급(2000t) 이상의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번 핵무력 완성 선언을 이유로 중단하기에는 그동안 투자한 게 아까울 수 있다.
단 한 차례 시험 발사만으로 화성-15형의 군사적 신뢰성을 보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통상 탄도미사일은 실전 배치되기 전 여러 차례 시험 발사를 하며 오류를 잡아낸다. 그래야 작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무기가 된다. 기술적으로 화성-15형의 추가 시험 발사가 필요한 배경이다. 북한은 2007년 무수단 미사일을 한 번도 시험 발사 안 하고 성급하게 배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해 뒤늦게 시험 발사에 나섰다가 잇따른 공중 폭발로 거듭 실패를 맛봤다.
박병수 정치에디터석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