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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남북 ‘땅밑 연결’ 48개 전화선, 핫라인의 모든 걸 알려주마

등록 2018-01-09 09:41수정 2018-01-11 18:55

[정치BAR] 남북 연락채널

1971년 적십자회담용 첫 2회선
“불의의 사태 대비” 직통전화도
경제·항공·해사 등 모두 48회선

남북 연락관 판문점 상주하며
전화·팩스로 회담·왕래 등 협의

직통선 끊기면 의사소통 ‘먼길’
미군이 영어로 소리치면 통역
북쪽은 받아 적거나 영상 촬영

관계 경색 때마다 북쪽이 끊어
8차례 채널 단절·복원 되풀이
지난 3일 오후 3시34분께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안 남쪽 자유의집에 설치된 ‘남북직통전화’로 우리 쪽 연락관이 북쪽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지난 3일 오후 3시34분께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안 남쪽 자유의집에 설치된 ‘남북직통전화’로 우리 쪽 연락관이 북쪽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지난 3일 오후 3시30분(평양시각 오후 3시)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로 북쪽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날 오전 북한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판문점 연락채널을 복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터라 남쪽에선 긴장을 놓지 못하던 순간이었다. ‘따르릉~.’ 남쪽 연락관이 수화기를 들었다. “○○○입니다.” 북쪽 연락관도 “△△△입니다”라고 답했다. 남북 연락관은 20여분 동안 전화가 잘 걸리는지, 목소리가 명확히 들리는지, 팩스는 전송·수신되는지 등 회선을 점검했다. 2016년 2월 끊어졌던 판문점 연락사무소 남북직통전화가 23개월 만에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 남북 ‘소통’의 현주소

한국전쟁 이후 남북은 군사적 대치 상태지만, 남북을 이어주는 연락채널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가장 최근의 위기는 2016년 초에 벌어졌다. 그해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2월엔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자 박근혜 정부는 곧바로 개성공단 폐쇄를 선언했고, 북한은 남북 연락채널을 모두 끊는 방식으로 받아쳤다.

이후 남북의 유일한 소통수단은 휴대용 확성기였다.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 유엔군 사령부 소속 미군과 통역관이 함께 섰다. 11월13일 판문점을 통해 탈북한 북한 병사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미군이 먼저 휴대용 확성기 또는 육성을 통해 영어로 외치고, 옆에 있던 통역관이 우리말로 전했다. 북쪽 군사분계선에 있던 북한군은 이를 녹화해 갔다. 지난 23개월 동안 남북은 상대에게 전할 말이 있을 때 휴대용 확성기를 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남쪽은 동해상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북한 어민의 송환 일정을 알리고, 임진강에 떠내려온 주검 인수를 요청했다. 북한군은 메시지를 종이에 받아 적거나,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실수로 녹화를 잘못했을 땐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요청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2년 가까이 연락채널이 끊겼지만, 실제 전화선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북한이 우리 쪽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사실상 연락 ‘단절’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관계자는 “꾸준히 통화를 시도했으나, 북쪽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남쪽의 판문점 자유의집에 마련된 남북연락사무소에 상주하는 연락관은 2명이다. 이들은 남북 합의에 따라 매일 아침 9시30분(평양시각 9시)께 북한과 ‘업무 개시’ 통화를 하고, 오후 4시 안팎에 ‘업무 마감’ 통화를 한다. 주말엔 쉰다. 물론 어느 한쪽의 요청이 있으면 연장근무, 휴일근무도 한다. 연락관은 남북 간 필요한 각종 연락, 팩스를 통한 전화통지문(전통문) 주고받기 등 일상적인 업무는 물론, 남북 합의 사항 이행과 관련한 실무협의, 남북 왕래·접촉에 필요한 안내도 맡는다. 필요한 경우, 이들이 직접 군사분계선 남쪽, 북쪽에 각각 나와 문건을 직접 전달하거나, 주민을 송환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채널이 단절됐던 기간에도 남쪽 연락관들은 정시에 연락사무소로 출근해, 응답 없는 북한을 향해 오전·오후로 업무 개시-마감 전화를 걸었다.

■ 남북 직통전화의 역사

현재 남북 합의로 연결된 직통전화는 모두 48회선이다. 이 회선에는 전화뿐 아니라 전화통지문, 각종 문서를 주고받는 팩스 회선도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33회선은 판문점을 지난다. 3일 다시 열린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에 있는 직통전화 5회선은 판문점 남쪽 자유의집과 북쪽 판문각을 연결한다. 5개 회선 가운데 음성 송·수신용 회선이 둘, 팩스 송수신용이 하나다. 나머지 2회선은 예비용 회선이다. 동케이블로 만들어진 이 전화선은 땅 밑으로 연결돼 있다. 최근 남북은 이 직통전화를 활용해 1월9일 고위급 남북당국회담을 준비하며 매일 활발히 소통한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현재는 사용하지 않지만, 향후 관계 개선에 따라 다시 개통될 가능성이 있는 전화선은 모두 41회선 정도다. 회담지원용(서울~평양 21회선), 해사당국용(서울~평양 2회선),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사무처용(서울~개성 3회선) 직통전화는 판문점을 경유한다. 판문점을 지나지 않는 회선으로는 군 상황실(경의선·동해선) 간 직통전화(9회선)와 남북열차운행을 위한 직통전화(6회선) 등 모두 15회선이 있다. 이들 회선이 언제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세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대부분 남북회담과 관련한 지원용으로 활발하게 활용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9일 열릴 고위급 남북당국회담에서도 서울~평양을 잇는 회담지원용 회선의 일부가 사용될 예정이다.

이밖에 1997년 11월 개통된 항공관제용 직통전화 2회선(대구~평양에서 2001년 인천~평양으로 바뀜)은 2010년 5·24조치 때문에 얼마 간 단절됐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중단된 적이 없는 연락채널이다. 인천공항과 평양 순안공항 관제소를 연결하는 이 회선은 북한의 평양 비행정보구역을 지나는 비행기를 관제할 뿐 다른 목적으로 쓰이진 않는다.

최초의 남북 직통전화는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생겨났다. 1971년 9월20일 1차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에서 남쪽 대한적십자사는 회담을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 판문점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상주 연락관과 직통전화를 두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이틀 뒤인 22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 자유의집과 판문각에 각각 상설 연락사무소가 꾸려졌고, 직통전화 2회선이 열렸다.

전화가 비밀리에 개통된 적도 있다. 1972년 남북 실무자 간 비밀접촉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에 전화를 하나 더 만들자고 제안했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김영주 조직지도부장은 서울, 평양에 있는 각자의 사무실에 직통전화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1980년대부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남북은 다양한 용도의 전화를 추가로 설치해왔다.

■ ‘전화 중단’, 남북관계의 가늠자

현재 판문점에 있는 남북 연락사무소는 처음에는 남북 적십자 연락사무소로 출발했다. 1992년 판문점에 ‘남북 당국 간 연락사무소’가 별도로 생기면서 2000년까지는 당국 간 연락사무소와 적십자 연락사무소가 별도로 운영됐다. 하지만 정부는 2000년 하반기부터 두 연락사무소를 구분하지 않고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남북 연락채널의 핵심인 판문점 연락사무소(남북적십자회담 연락사무소)에 있는 직통전화는 개통된 이래로 여섯차례 중단됐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지 8년여간 존재했던 판문점 남북 당국 간 연락사무소에 설치된 직통전화의 중단 횟수까지 더하면 모두 8차례다. 연락을 끊는 쪽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채널을 단절하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1976년 8월 동해상에서 제3신진호가 납북됐을때 한국 정부가 송환협의 통지문을 보냈지만, 북한은 판문점 연락채널을 끊어버렸다. 1980년 2월 남북은 총리회담 절차를 논의하기로 하고 연락을 재개했다. 하지만 총리회담의 장소, 의제, 호칭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고, 그해 북한은 접촉 중단을 선언했다. 이 연락채널은 1984년 9월 남북이 북한 수재 지원과 관련한 적십자 실무접촉에 합의하면서 다시 열렸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까지도 온전했던 연락채널은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인 2008년 11월 북한에 의해 다시 끊겼다. 한국이 63차 유엔총회에서 대북인권결의안을 공동 제안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듬해인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에 따른 조문단 파견, 남북적십자회담 개최를 위해 복구됐지만,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북은 “판문점 적십자 연락대표 사업 완전 중지와 모든 남북 간 통신연계를 단절한다”고 통보했다. 2011년 1월 남북 직통전화가 다시 연결됐지만, 2013년 3월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에 반발하며 연락채널을 끊었다. 3개월여동안 끊겨있던 연락채널은 6월께 다시 살아났다. 그해 4월 당시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반발하며 개성공단 가동을 잠정 중단했고, 9월 개성공단이 다시 재가동되기도 했다. 이 연락채널은 2016년 개성공단 폐쇄로 중단됐다가, 남북관계가 급 ‘해빙기’를 맞으며 23개월만인 지난 3일 다시 개통됐다.

한편 적십자 연락사무소와는 별도로 1992년 5월 판문점에 설치된 남북 당국 간 연락사무소는 1996년 9월 북한 잠수정의 강릉 침투 사건이 발생한 뒤 끊겼다가 2000년 7월 1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에 따라 그해 8월 재개됐다. 하지만 이 채널은 두어달 간 지속되다가 중단됐다. 이후 정부는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남북 당국 간 연락사무소와 적십자 연락사무소를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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