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판문점 남쪽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들어오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서 회담을 하려고 왔는데 어떻게 될 건지 뻔하지 않나. 아주 잘될 게 분명하지. 기자 선생들은 잘 안되길 바라오?”
1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리는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온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기자들이 “오늘 회담을 어떻게 전망하느냐”는 남쪽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리선권 위원장과 남쪽 기자단의 ‘신경전’의 발단은 이랬다. 한 기자는 리 위원장을 만나 “엄중한 사태로 인해서 회담이 무기한 연기됐었는데 그 엄중한 사태는 해결이 됐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리 위원장이 발끈했다. 그는 2~3초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저거 뭐야, 기자 선생들이 질문하는 거는 여러가지 각도에서 할 수 있지. 그런데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질문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되받았다. 기자의 질문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는 “엄중한 사태가 어디서 조성된 걸 뻔히 알면서 나한테 ‘해소됐냐’ 물어보면 되나”라며 “명백한 건 기자 선생들이 앞으로 질문도 많이 할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게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남 수뇌 상봉도 열리고 판문점 선언도 채택된 이 마당에서 또 이 분위기에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시 말하면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는 측면에서 질문이 진행되고 뭔가 불신을 조장시키고 또 그런 데서 오도할 수 있는 질문을 하면 되지 않겠다”며 “어디 소속입니까”, “앞으로 이런 질문은 무례한 질문으로 치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은 애초에 지난 5월16일 판문점에서 4·27 판문점 선언 후속조치를 위한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했었다. 하지만 북한은 회담이 예정된 16일 0시30분에 “‘맥스선더’(한-미 연합)훈련을 이유로 고위급회담을 무기 연기한다”며 돌연 ‘회담 중지’ 방침을 남쪽에 통보했다. 리 위원장이 이날 기자에게 한 발언은 5월16일 고위급회담 개최 무산의 원인이 남쪽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차원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통해 미국 핵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다.
리 위원장은 또 회담의 의제를 묻는 말에 “그래서 기자 선생들의 궁금증을 덜어주기 위해서 회담을 공개적으로 하자고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귀측(남쪽) 대표단에 가서 공개하는 데 응하라고”라고 답했다. 지난 1월9일 올해 처음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도 리 위원장은 회담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공개회담’을 제안한 바 있다.
한편, 리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된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는 “(판문점) 통일각에서 미측과 (북쪽의 회담이) 이뤄지는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건 저하고 상관없는 일”이라며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건 저기 싱가포르에 날아가서 질문하소. 여긴 판문점이라고”라고 답했다.
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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