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10일 기자회견에서 “(종업원 중)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한국에 오게 됐다”며 ‘독립적 진상 규명과 조사, 책임자 규명’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 등이 ‘기획’했다는 의혹이 커지는 중국 저장성 닝보 북한식당 ‘류경’ 여종업원들의 2016년 4월 입국 경위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이 16일 공개 브리핑에서 한 답변이다. “(국정원이) 종업원들을 데리고 오면 동남아시아에 식당을 차려주겠다고 꼬였다”는 ‘류경’ 지배인이던 허강일씨의 새 주장을 둘러싼 문답이다. 질문이 쏟아졌지만 백 대변인은 “추가로 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앞서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10일 기자회견에서 “(종업원 중)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한국에 오게 됐다”며 ‘독립적 진상 규명과 조사, 책임자 규명’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을 때 통일부의 대응은 사뭇 달랐다. 백 대변인은 다음날 공개 브리핑에서 “종업원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입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킨타나 보고관의 회견 내용을 사실상 반박했다.
왜 백 대변인은 닷새 사이에 ‘자유의사 입국’에서 ‘기존 입장 불변’으로 답변을 바꿨을까? 추상화일 뿐 핵심 메시지는 같다고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사정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통일부의 ‘기존 입장’이 한가지만도 아니다. 지난해 12월28일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위원장 김종수)는 류경식당 여종업원 관련 사안을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통일부가 수동적으로 (발표)하게 된 것이고, 구체적인 정보 사항을 통일부는 알고 있지 않았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탈북 사안을 공개 발표하지 않은 관례와 배치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미 이때부터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는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한꺼번에 탈북한 것은 처음”이라며 대북제재 효과와 엮어 대대적으로 선전한 박근혜 정부의 통일부와 거리를 두려 했다. 5월10일 허강일씨가 방송에 나와 “국정원에 속았다”고 주장한 직후엔, “입국 경위, 자유의사 등에 대한 지배인과 일부 종업원의 새 주장이 있다. 사실관계 확인 필요성이 있다”(5월11일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며 사실상 재조사 방침을 내비쳤다. 통일부는 길게 잡으면 지난해 말, 짧게 잡아도 5월 이후엔 ‘자유의사 입국’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발표와 거리를 뒀다. ‘제3의 길’ 모색을 위한 기초 다지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정에 비춰보면, 지난 11일 “자유의사 입국”이라는 통일부 대변인의 답변이 오히려 돌출적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통일부가) 왜 그렇게 답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 문제를 어찌 풀어야 할지 딜레마”라면서도 “어쨌든 현시점에서 ‘자유의사 입국’이라는 답변은 부적절하다”고 짚었다. 이 사안에 밝은 전직 인사는 “관료주의적 관성이 빚은 참사”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선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마침 천정배(민주평화당)·송갑석(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 등을 공개 촉구했다. 통일부의 뒤늦은 공식 답변 조정이 ‘제3의 길’을 열 실마리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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