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제9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오른쪽)과 안익산 북측 수석대표가 함께 입장하고 있다. 남북장성급회담은 지난달 14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제8차 회담이 열린 이후 47일만이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군 당국이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을 논의하기 위해 판문점에서 머리를 맞댔다.
31일 오전 10시 판문점 남쪽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9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이 시작됐다.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당국 간 회담으로,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난 6월14일에 이어 올해 두번째다. 남쪽 대표단은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을 수석 대표로 조용근 국방부 북한정책과장(육군 대령), 안상민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해군 대령), 이종주 통일부 회담 1과장, 한석표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으로 꾸려졌다. 북쪽 대표단은 안익산 육군 중장을 비롯해 엄창남 육군 대좌, 김동일 육군 대좌, 오명철 해군 대좌, 김광협 육군 중좌로 구성됐다. 김도균 수석대표를 비롯해, 조용근 과장, 안상민 과장 등 남쪽 대표단은 지난 6월 8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 참여했고, 북쪽 대표단 구성은 8차 회담과 아예 같아 남북 군 당국이 지난 회담에 이어 연속성 있는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북 수석대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서 세계에 기쁨주자”
이날 남쪽 김도균 수석대표는 판문점 평화의집에 마련된 회담장에서 “8차 장성급 군사회담 때 만나고 한 47일 정도 경과했다”며 “무더위 속에서 내려오느라 고생했다. 회담이 오늘도 잘 될 거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북쪽 안익산 수석대표는 “북남 수뇌분들께서 이 판문점에 역사의 자취를 남긴 그때로부터 세계가 우리 판문점을 다 주시하고, 북과 남의 온 겨레가 판문점을 주시하고 있다”며 “특히 우리 북남 군부가 진행하는 이 회담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회담 의제와 관련해 국내 방송사의 보도 내용을 언급하며 “신통히도 우리 오늘 김도균 소장하고 마주 앉아서 토론할 내용들을 다 예평을 했다. 참 신통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남쪽 언론이 이번 남북장성급군사회담 의제로 꼽은 내용이 대체로 맞다고 확인한 셈이다.
안 수석대표는 남쪽 언론의 보도에 대한 언급을 이어가며 “(남쪽 언론이) ‘오늘 북측 대표단은 종전선언 문제까지 들고 나와서 남측을 흔들라고 잡도리 할 수 있다’ 이렇게 까지 이야기한다”며 “우리가 ‘미국을 흔들다가 잘 안되니까 이번에 남측을 흔들어서 종전선언 문제 추진할라고 한다’ 이렇게 보도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에 종전선언 채택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는 국내 언론 보도를 짚은 대목이다. 그는 이어 “맞는가 안 맞는가 그 진위를 가리기 앞서서 북과 남의 정말 온 겨레가 그만큼 우리 회담을 중시한다는 이런 걸 알게 됐고, 또 그 과정에 시대적인 사명감이랄까, 평화와 번영을 위한 북남 사이의 노력하는 데서 군부가 차지하는 몫을 정말 깨닫게 하는 이런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고 평가했다.
이날 남북 회담 수석대표들은 회담 시작에 앞서 속담을 주고 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익산 수석대표가 먼저 “옛날 말로 김맬 때 ‘손님이 아흔 아홉 몫을 낸다’고 일러 오고 있다”며 “서양 속담에도 ‘주인 눈 두 개가 하인 손 천 개를 대신한다’ 이런 서양속담도 있다. 이걸 놓고 봐도 우리가 주인의 자세가 될 입장에서 마음가짐 단단히 가지고 허심탄회하고 문제를 논의해서, 이 회담장을 지켜보고 있는 북과 남의 온 겨레, 세계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자는 이런 말을 서두에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김도균 수석대표는 “가꾸지 않은 곡식이 잘되리라는 법이 없다 이런 말이 있다”며 “좋은 곡식을 얻기 위해서는 공도 들여야 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지 좋은 곡식을 우리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번 봄에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서 이미 씨앗은 뿌려졌다고 저는 생각한다. 그래서 가을에 정말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무더위속에서도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금년 가을에 좋은 수확을 틀림없이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오늘 회담을 통해서 남북 온 겨레가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그런 성과들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남쪽 김도균 수석대표는 20cm 정도 두께인 검은색 서류 파일을 회담장에 가지고 들어왔다. 북쪽 대표단과 논의하려는 내용이 얼마나 많은 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북쪽 안익산 수석대표도 가죽 재질로 보이는 서류철을 들고 회담장에 들어왔다. 김 수석대표의 ‘두꺼운 서류 파일’을 본 안 대표는 다른 북쪽 대표들에게 “보따리 보라우”라며 “(남쪽이) 많이 끌고 나올 것 같은데 오늘 허심탄회하게 회담 좀 잘해서 실제로 우리 인민들이 ‘야 군대가 제일 앞서 나가는 구나’ 이런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남북장성급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 등이 31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제9차 회담을 위해 종로구 남북회담본부를 출발하기에 앞서 취재진 앞에 각오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판문점에서 올해 두번째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이 열리는 3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대표단이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단
■ 남북, 무슨 현안 논의할까?…국방부 “비무장지대 병력 장비 시범 철수 추진”
앞서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육군 소장)은 회담장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이날 오전 7시30분께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6월14일 8차 장성급 군사회담이 개최된 이후에 오늘 40여일만에 9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하게 됐다”며 “이번 회담에서는 지난 4월27일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군사분야 합의 사항과 그리고 지난 회담에서 상호 의견을 교환했던 의제들을 중심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회담을 통해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의 실질적 조치가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남북 정상이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를 위해 합의한 내용을 보면 이날 9차 회담에서 어떤 내용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지 예상할 수 있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 전단 살포 등 적대행위 중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 군사 충돌 방지 및 안전한 어로활동 보장을 위한 실제적 대책 수립 △상호 협력, 교류, 왕래, 접촉 활성화 위해 군사적 보장대책 수립 △국방부 장관 회담 및 군사 당국자 회담 개최 등에 합의했다. 국방부는 지난 5월1일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민간단체에 대북 전단 살포 중단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또, 한-미 군 당국은 남북관계 개선 및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8월로 예정됐던 ‘프리덤 가디언 군사연습’을 전면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월14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8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남북 군 당국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됐던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문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조성하는 문제 △남북 교류협력과 왕래 및 접촉에 대한 군사적 보장대책을 수립하는 문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시범적으로 비무장화 하는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서해 해상 충돌방지를 위한 2004년 6월4일 남북장성급군사회담 합의 철저히 이행 △동·서해지구 군통신선 완전 복구 등에만 합의했다. 지난 7월16일부로 일단 서해지구 군 통신선이 완전히 복구돼 모든 연락 기능이 정상화됐고, 향후 동해지구 군 통신선도 남북 사이 실무협의를 거쳐 복구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지난 8차 회담에서 논의됐지만,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던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 조성,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이 9차 회담 주요 논의 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방부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에서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의 실질적 조치로써 비무장지대 안 지피(GP·감시초소) 병력과 장비를 시범적으로 철수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긴 ‘남북 군사당국회담 향후 추진 방안’을 공개한 만큼 남쪽 대표단이 이러한 의제를 북쪽에 제안할 가능성도 높아보인다. 당시 현안보고에서 국방부는 감시초소를 시범적으로 철수한 뒤 역사 유적, 생태 조사 등과 연계해 향후 이들을 완전 철수할 계획을 밝혔다. 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를 추진하는 차원에서 “정전협정 정신에 기초해 경비인원을 축소하고, 화기조정, 자유왕래 등을 복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비무장지대 안 남북 감시초소에는 기관총 등 중화기가 반입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무장지대 안 남·북·미 공동 유해 발굴 추진과 관련한 논의도 이뤄질 전망이다. 국방부는 같은 현안보고에서 이러한 계획을 밝힌 바 있고, 필요하다면 북한 지역에서 이뤄지는 북-미 사이의 유해 발굴에 남쪽이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 국방부가 서해 상 남북 상호 적대행위를 중단,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평화수역을 설정, 남북 어민들의 이익 창출과 연계해 공동어로구역을 설정 등을 북쪽과 함께 논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관련 논의 역시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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