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 둘째 날인 25일 오후 금강산 호텔에서 북쪽 접객원들이 객실에서 개별 상봉 중인 남북 이산가족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1차 남북 이산가족상봉 2차 행사 둘째날인 25일, 남과 북의 헤어진 가족들은 오전 10시부터 금강산호텔 객실에서 3시간동안 가족끼리만 시간을 보내는 ‘개별상봉’을 위해 마주 앉았다. 상봉행사 첫날인 24일에는 다른 가족들을 비롯해 취재진, 행사 관계자 등이 모두 함께 있는 자리에서 대화를 나눠야 했지만, 개별상봉 때 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가족끼리 은밀하고 깊은 속 이야기를 나눴다.
■ 가족끼리 오붓한 3시간…개별상봉 마친 가족들 “속정 나눌 수 있었던 시간”
2차 상봉행사에 참여한 이산가족 가운데 유일한 부자지간인 남쪽 아들 조정기(67)씨는 북쪽 아버지 조덕용(88)씨와 개별상봉을 한 뒤 전날보다 더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어제는 만나서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 한을 풀어드리고, 식사하면서 아버지랑 좀 풀고 했어요. 오늘은 (개별상봉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어머니 한 풀어 드려야겠다는 생각만 있고, 잘 실감도 안 나고 했는데, 오늘은 이야기 하니까 좋으네요. 따로 만나니까 엄청 편하고 좋아요.”
아들 조씨는 개별상봉이 끝난 뒤 북쪽 아버지 조덕용(88)씨를 부축하고 호텔 로비로 나와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 눈 건강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아버지는 오른쪽 눈에 백내장이 생겨 수술을 3차례나 했는데, 수술이 신통치 않게 돼 시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호텔 객실에서 이뤄지는 개별상봉에는 취재진이 접근할 수 없게 돼 있다. 상봉이 끝난 뒤 취재진이 가족들을 만나 물어보니, 아버지 조덕용씨는 개별상봉에서 며느리 박분희(56)씨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전해진다. “다가오는 추석에 어머님(남쪽 부인) 제사상에 내 대신 술 한 잔 따라 드려라.” 조씨 마음 속에는 지난 5월 세상을 먼저 떠난 남쪽 부인에 대한 안타까움, 68년을 혼자 기다리게 한 데 대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한편, 어머니와 함께 북쪽 이모를 만난 남쪽 조카 최혁(46)씨는 개별상봉을 마친 뒤 이모 박봉렬(85)씨의 휠체어를 밀고 나오면서 “(개별상봉 시간 동안) 속에 있는 얘기를 많이 하셨다. (고향인) 제주도에 살면서 있었던 이야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쪽 큰언니 강호례(89)씨와 만난 남쪽 동생 강두리(87)씨의 딸 최영순(59)씨는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으니 (이모가) 오늘은 좀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면서도 “이모님들이 만나시니까 좋긴한데, 또 헤어져야 하니까…”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북쪽 언니 박영희(85)씨를 만난 남쪽 동생 박유희(83)씨는 개별상봉을 마친 뒤 “시간이 너무 짧다”며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안부를 물어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그래도 객실에서 하니까 더 속정을 나눌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 둘째 날인 25일 북한 금강산 호텔 객실에서 진행된 가족별 점심식사에는 북쪽이 준비한 도시락이 제공됐다. ‘깨잎쌈밥’과 함께 반찬으로는 ‘닭고기냉찜, 왕새우튀기, 이면수기름구이, 돼지고기남새볶음’ 등이 나왔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가족들은 이날 개별상봉(2시간)에 이어 점심식사도 객실에서 도시락으로 함께 먹었다. 방마다 배달된 이날 점심 도시락은 1차 행사 때에 이어 북쪽 당국이 준비했다. 북쪽에서는 ‘도시락’을 곽밥이라고 부르는데, 이날 ‘곽밥’에는 빠다겹빵, 김치, 닭고기랭찜, 왕새우튀기(튀김), 오이즙볶음, 이면수기름구이, 돼지고기남새(채소)볶음, 가지굴장볶음, 깨잎쌈밥, 참외, 인삼차 등이 담겼다.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 날인 25일 오후 북한 외금강호텔에서 북쪽 리근숙(84) 할머니에게 전달할 자수를 남측 이부동생들이 보여주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북쪽 형 장운봉(84)씨와 상봉한 남쪽 동생 장구봉(82)씨는 “형과 5년 안에 통일이 될 지 내기했다”면서 개별상봉 시간에 형제끼리 나눈 대화를 취재진에게 들려줬다. 구봉씨는 “살 때까지 통일이 되면 다행이고,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했고, 형도 그러자고 했다”며 “그 양반(형)이 84살인데, 5년 내 통일이 되겠느냐, 나하고 내기도 했다. 그 양반은 ‘된다’, 나는 ‘통일은 안 되더라도 왕래는 가능할 거다. 왕래만 돼도 얼마나 좋겠느냐’고 했다”고 전했다. 이날 개별상봉에서 형 운봉씨는 동생 구봉씨에게 ‘어머니를 잘 모셔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전했다고 한다. 구봉씨는 “형이 맏이인데, 차남인 내가 어머니를 모셨으니, ‘내가 할 일을 네가 해서 고맙다’고 형이 말하더라”고 전했다. 개별상봉이 진행되는 객실은 단체상봉이 열리는 면회소보다 조용하고 오붓해 가족끼리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빠 아직도 발등 상처가 있어요?” “네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니.” “어머니가 자주 말씀하셔서 알죠. 어릴 때 오빠가 상처 때문에 절뚝거리며 걷던 기억도 나는걸요.” 남쪽 동생 한춘자(79)씨는 북쪽 오빠 한석구(84)씨를 만나 어릴 적 생긴 상처를 확인하며 다시 한 번 남매지간임을 확신했다고 했다. 한씨는 상봉을 시작하기 전 취재진과 만나 어릴 때 오빠가 철공소에서 일하다 발등에 아주 큰 상처를 입었는데, 지금도 남아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씨는 24일 첫 상봉에서 오빠를 만났을 때는 곧바로 오빠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25일 개별상봉을 하며 오빠의 발등 상처를 확인한 뒤 오빠임을 확신했다.
한편, 남북 이산가족들은 개별상봉이 이뤄지는 동안 각자 남과 북에서 준비해 온 선물도 주고 받았다. 개별상봉에 참여하기 위해 남쪽 가족이 묵고 있는 금강산호텔로 들어선 북쪽 가족들의 손에는 개성고려인삼차, 북한 천연꿀, 고려술, 고려인삼술 등이 들려 있었다.
북쪽 김용수(84)씨의 남쪽 손녀딸인 중학교 3학년 김규원 학생은 북쪽 큰할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남쪽 가족편에 전해왔다. 남쪽 동생 김현수(77)씨는 중3 손녀딸이 큰 할아버지인 김용수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날 개별상봉 시간에 형에게 전달했다.
북쪽 둘째언니 량차옥(82)씨를 만나는 남쪽 다섯 자매는 언니에게 주려고 ‘김부각’을 선물로 준비했다. 김부각은 자매들의 고향인 전남 곡성에서 즐겨먹는 계절음식이자 가족이 챙겨먹던 밑반찬이다. 엄마의 특별한 손맛이 스민 김부각을 가져와 개별상봉 때 언니에게 전했다.
북쪽 큰누나를 70년 만에 만난 남쪽 동생 황보우영(69)씨는 개별상봉 시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대로 큰누나가 14살 때 직접 만들어 놓고 간 자수를 전했다. (
▶관련기사: “첫째에게 꼭 전해줘” 하늘나라 엄마와 84살 딸 이어준 ‘자수’)
남쪽 동생 김현수씨가 북쪽 형 김용수씨에게 전한 손녀딸 편지. 남쪽 가족 제공
■ 단체상봉 2시간도 마무리…내일(26일) 작별상봉만 남아 아쉬움에 ‘눈물’
“통일이 다른 게 아니야. 서로 오가면서 물건도 오가고, 기차도 오가고, 그게 통일이야. 지금 이렇게 만난 것도 통일이지, 안 그래?” (남쪽 조카 정대수(81)씨)
2차 행사 둘째날인 25일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개별상봉을 마친 뒤, 오후 3시15분께부터 2시간 동안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단체상봉를 통해 다시 만남을 이어갔다. 수십년 만에 만난 가족과 함께 즐겁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가족이 있었지만,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벌써 슬픔에 빠진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북쪽 누나 최성순(85)씨는 이날 오후 3시께 휠체어를 타고 단체상봉장인 이산가족 면회소 1층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남쪽 동생 최성택(820씨가 입구까지 가서 누나를 데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누나 성순씨는 그때부터 20여분동안 말 없이 울기만 했다. “고모가 우시니까 우리 다 울잖아.” 남쪽 조카 최은희(52)씨 눈도 벌게졌다. 남동생 성택씨는 누나 성순씨에게 물을 따라줬다. 손이 덜덜 떨렸다. “자주 만나.” 동생 성택씨가 누나 성순씨에게 말했다. 내일 작별상봉(3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만나자마자 이별이란 생각에 벌써 서러움이 밀려왔다.
이날 단체상봉에서 가족들은 옛 추억이 스민 물건들을 주고 받기도 했다. 남쪽 조카 김향미(53)씨는 북쪽 큰이모 신남섭(81)씨에게 줄 졸업장과 상장을 가져왔다. 남섭씨의 여동생인 향미씨의 어머니는 언니 남섭씨의 졸업장과 상장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다 잃어버려도 언니 남섭씨의 자랑스런 물품만은 잘 간수했다. 여동생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딸에게 “혹시라도 나중에 (남섭씨를) 만나게 되면 전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먼저 간 남쪽 동생이 전해준 졸업장과 상장을 받아 든 남섭씨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가족들도 따라 울었다.
한편, 이날 단체상봉이 열리기 전, 한 고령의 남쪽 이산가족이 지병으로 상봉을 중단하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강릉 아산병원으로 실려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상봉 행사에 함께 왔던 환자의 보호자가 병원에 동행하면서 상봉 행사에 참여하는 남쪽 가족이 326명에서 324명으로 줄었다. 북한 당국은 이산가족을 실은 응급차가 군사분계선을 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절차를 생략해줬고, 이에 따라 신속한 후송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금강산/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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