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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한-미 군사훈련이 재개된다면

등록 2018-11-17 10:05수정 2018-11-17 13:40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정경두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10월3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0차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굳건한 연합방위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연합방위지침’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두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10월3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0차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굳건한 연합방위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연합방위지침’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가 외교 트랙에서 더 성공할수록 군사 영역에서는 그만큼 더 불편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협상은 한반도 군사태세에 변화를 주기 시작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이 지난 5일 듀크대에서 ‘지정학적 압박시대의 미군’이라는 제목으로 한 강연의 일부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비핵화 협상의 진전에 따라 주한미군의 태세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언급이어서 이목을 끌었다. 일각에선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가능성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미국 합참의장은 대통령에게 군사전략을 자문하는 최고위급 군인이다. 그런 군인의 입에서 북-미 협상이 지속적으로 군사에 불편한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게 흥미롭다.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이 참여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이 줄줄이 유예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의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워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군사가 항상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아니다. 1992년 10월 당시 딕 체니 국방장관은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영변 핵시설 사찰을 위해 중단했던 ‘팀스피릿 훈련’을 재개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사찰 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된 게 빌미가 됐지만, 외교적 접근에 대한 군부 강경파의 불만이 작동한 것 또한 사실이다. 체니 국방장관은 북-미 협상을 주도하는 국무부와 이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팀스피릿 훈련 재개 선언은 한반도 정세를 급냉시켰다. 북한은 전국에 ‘전시 준비태세 돌입’ 명령을 내렸다.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협정을 파기했다. 이른바 ‘1차 북핵 위기’가 터진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이어진 ‘외교의 시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 여파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난해 한반도를 전쟁 직전 상황으로까지 몰고갔다.

한-미 안보협의회의는 군사가 외교를 압박하는 무대다. 두 나라 국방장관이 모여 군사동맹의 강고함을 한껏 과시한다. 지난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50번째로 열린 안보협의회의도 비슷했다. 한-미 국방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주한미군과 연합사령부 체제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남북관계 진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간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완고한 합의였다.

오히려 불편해진 건 외교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핵과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용하여 대한민국에 확장 억제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9·19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 시민들 앞에서 공언한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한반도’ 구상과 딱 들어맞지 않는다. 한-미 국방장관이 공동성명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도 문 대통령이 공들이는 ‘동북아 다자 평화안보체제’ 구상과 바로 닿지 않는다. 한·미·일 군사협력이 동북아에 새로운 대립구도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와 군사는 이처럼 서로 불편함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지금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외교가 주는 불편함을 군사가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한-미는 내년 상반기 예정된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유예 여부를 협의하고 있다.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는 가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최근 비핵화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미국의 인내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관측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군사훈련이 재개되면 한반도 정세는 급전직하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군사훈련 유예는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취한 유일한 상응조처다. 종전선언에 이어 제재 완화 요구마저 미국의 벽에 부닥친 상황에서 군사훈련이 재개된다면 비핵화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체니 국방장관이 팀스피릿 훈련 재개를 선언할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도널드 그레그는 그때의 당혹감을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대사로 봉직하던 기간 중에 미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였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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