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각) 이라크 주둔 미군 공군기지를 방문해 장병들에게 자신의 시리아 철군 결정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한미군은 지난 65년 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주한미군은 향후에도 한반도 무력분쟁 방지와 동북아 평화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계속 수행해나갈 것이다.”
“언젠가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도 돈을 조금 내고 있지만 미국이 너무 많이 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들을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은 최근 사임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10월31일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밝힌 것이다. 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토로한 것이다. 주한미군의 미래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이 ‘극과 극’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시리아 철군 결정이 아니더라도 매티스 장관의 사임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엄포가 아니다. 그는 북한이 새벽에 탄도미사일을 쏘아대던 무렵에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야 할 이유를 물었다. 트럼프 백악관의 비화를 담은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를 보면, 지난해 7월20일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 장관을 비롯한 주요 참모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데 1년에 35억달러를 쓰고 있다. 나는 그들이 왜 거기 있는지 모르겠다. 전부 집으로 데려오자!”고 다그쳤다. “매티스는 완전히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고 책은 기록한다.
변덕쟁이처럼 보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깨고,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관철시켰다. 중국에 무역전쟁을 걸어 대규모 보복관세를 물리고, 이슬람 세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최근엔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할 예산을 요구하며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까지 감수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를 돈의 문제로 보는 것부터가 전례없는 발상이다. 미국에서 이따금 주한미군 철수론이 나오고, 실제로 병력이 감축되기도 했지만, 그 이유를 돈에서 찾은 적은 없었다. 시리아 철군 결정도 결국 돈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 미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시리아 철군 결정을 옹호하면서 “미국은 이제 호구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돈을 내지 않는다. 이제는 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논리는 이제 먹히지 않는다. 한국이 내년부터 방위비 분담금을 2배로 올려주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에 기어코 값을 매길 것이다. 한국이 그걸 낼 수 없다고 하면, 주한미군은 짐을 싸기 시작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미국의 국방비 규모에 짜증 섞인 트위트를 날렸다. “우리는 올해 7160억달러(796조9000억원)를 썼다. 미칠 노릇이다!" 그러면서 언젠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군비 경쟁을 중단하기 위한 대화를 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감세정책에 따라 재정적자가 불어나는 바람에 장기적인 군비 경쟁을 감당할 수 없다는 고백이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9700억달러(1087조85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비당파 기구인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미국 역사상 대규모 경기침체나 전쟁 전후를 빼면 이처럼 재정적자가 확대된 적이 없다.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을 재앙으로 여기는 이들의 적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다.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거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그는 주한미군 철수의 논리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 10월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한 국방수권법을 발효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습’을 저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워싱턴에선 이미 주한미군의 미래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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