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28일 국방부 청사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면담한 뒤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국방부는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28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잇따라 찾았다.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한-미 방위비 분담 문제를 주로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계기 위협비행-추적레이더 조준’을 둘러싼 한-일 갈등과 관련해서도 협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확인되진 않고 있다.
미국이 한-일 갈등을 ‘중재’하려는 모습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한-미-일 군사협력의 중요성이 줄어든데다, 국익과 직접 관련 없는 갈등에는 관여하지 않으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가 작동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이번 사안은 한-일이 풀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도 미국의 중재나 개입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이 24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났을 때도 한-일 갈등 해소 방안을 협의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으나, 국방부는 그런 논의는 없었다고 공식 부인했다. 국방부가 앞서 “미국과 상황을 교감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힌 데서도 후퇴한 듯한 언급이다.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으려는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부작위’는 전임 행정부와 비교하면 더 도드라진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갈등하자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해 이를 조정하려고 시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4년 3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미-일 정상회의를 열겠다고 선언하고, 두 정상을 ‘반강제적’으로 한 테이블에 앉히기도 했다.
미국은 한-일 갈등이 한-미-일 협력의 틀을 해치는 수준까지 격화하지 않는 한 적극적 개입을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갈등이 진실게임 양상을 띠는 바람에 현실적으로 미국의 입지가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정 장관(8일 전화 회담)과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16일 직접 회담)은 각각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과 접촉해 미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려 노력했지만, 미국은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미 국방부는 한-미 장관 전화 회담에 대해 자료를 내지 않았고, 미-일 회담과 관련해선 “인도-태평양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기 위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겠다”고만 밝혔다.
유강문 선임기자,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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