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른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 철수 감시초소(GP) 가운데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원형을 보존하기로 한 강원도 고성 지피를 13일 국방부가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대한민국 최동북단에 위치한 고성 지피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최초로 설치된 곳으로 북한 지피와의 거리가 580m밖에 되지 않아 남북이 가장 가까이 대치하던 곳이다. 현재 이곳은 장비와 병력을 철수하고 지난해 11월7일을 마지막으로 비무장지대 경계 임무는 공식적으로 종료된 상태다. 고성/사진공동취재단
요새로 들어가는 철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졌다. 주변을 둘러싼 철조망은 67년 동안 비바람을 맞았다. 빨갛게 녹이 슬었다. 강원도 고성 보존 감시초소(GP·지피)는 남쪽 최북단에 있는, 가장 오래된 요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부터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의로 철수하기 전까지 남쪽 군인들은 이곳에서 줄곧 북쪽을 향해 총을 겨눴다.
고성의 민간인통제구역으로 들어와 일반전초(GOP) 철책선을 지나면 그때부터 비무장지대(DMZ)다. 정전협정 이후 남쪽 비무장지대에는 감시초소가 60여개, 북쪽에는 160여개가 들어섰다. 남북은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지난해 10~11월 감시초소 각 11곳에서 화기와 장비, 병력을 철수했다. 다만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해 각각 한곳씩은 그 형태를 보존하기로 했다. 남쪽은 해발 340m 높이에 자리한 고성 지피를 택했다. 이 지피에서 군사분계선까지는 겨우 300m, 마주 보는 북쪽 감시초소까지는 580m 거리다. “남쪽 지피에서 소리를 치면 북쪽에서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라고 보존 지피 관계자는 말했다. 13일 군 당국은 처음으로 이 초소를 언론에 공개했다. <한겨레>가 직접 현장을 둘러봤다.
뜯겨 나간 창문.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른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 철수 감시초소(GP) 가운데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원형을 보존하기로 한 강원도 고성 지피를 13일 국방부가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초소 내부 모습. 대한민국 최동북단에 위치한 고성 지피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최초로 설치된 곳으로 북한 지피와의 거리가 580m밖에 되지 않아 남북이 가장 가까이 대치하던 곳이다. 현재 이곳은 장비와 병력을 철수하고 지난해 11월7일을 마지막으로 비무장지대 경계 임무는 공식적으로 종료된 상태다. 고성/사진공동취재단
일반전초 철책선을 통과해 비포장길을 따라 3.4㎞쯤 달리면 그 끝에 오래된 성처럼 보이는 보존 지피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날 체감온도는 영하 11도. 군인도, 무기도 모두 빠진 보존 지피는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다. 자물쇠로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냉기가 감돈다. 무기와 탄약이 쌓여 있던 창고는 입을 쩍 벌렸다. 속은 까맣고 텅 비었다.
지난해 10∼11월 초소에서 병력이 빠지기 전까지는 1개 소대 규모(30∼40명) 인원이 상주했다. 초소 안에는 장병들의 근무를 위한 내무반, 식당, 화장실 등이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어디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바로 알아차리긴 쉽지 않았다. 취재를 위해 가져간 조명을 구석구석에 비추니 벽에 미처 제거되지 못한 “잔반” 표식이 보여 식당인 줄 알았다. 허연 변기가 놓여있어 화장실인 줄 알 정도였다.
1층 생활관에서 계단을 통해 꼭대기로 올라가니 네댓명 정도가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방’처럼 생긴 시설물이 여러개 보였다. 북쪽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군인들이 달려가던 곳이다. 지피 관계자가 “기관총, 기관포 따위가 북쪽을 향해 거치됐던 공용화기진지”라고 설명하기 전까지는 콘크리트 덩어리로만 보였다. 이제 텅 빈 진지에는 모래주머니 10여개만 남았다. 초소 감시탑과 방호벽 주변에서 펄럭이던 태극기와 유엔사 깃발도 모두 뽑혀 나가 깃대만 굴뚝처럼 남아 있다.
지피 철수로 군의 경계태세에 지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고개를 저었다. “남쪽은 북쪽과 달리 지피 후방에 일반전초를 운영해 보안장치가 이중으로 돼 있으며, 과학화된 경계시스템으로 감시체계를 운용 중”이라고 했다.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른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 철수 감시초소(GP) 가운데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원형을 보존하기로 한 강원도 고성 지피를 13일 국방부가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초소 내부 모습. 대한민국 최동북단에 위치한 고성 지피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최초로 설치된 곳으로 북한 지피와의 거리가 580m밖에 되지 않아 남북이 가장 가까이 대치하던 곳이다. 현재 이곳은 장비와 병력을 철수하고 지난해 11월7일을 마지막으로 비무장지대 경계 임무는 공식적으로 종료된 상태다. 고성/사진공동취재단
초소에 올라 북쪽을 향하니 바로 아래 군사분계선을 의미하는 노란 깃발이 펄럭인다. 고개를 살짝 들면 벌건 맨살을 드러낸 언덕이 눈에 띈다. 지난해까지 북쪽 감시초소가 있던 터다. 그 뒤로는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접전을 벌인 월비산 고지가 우뚝 솟았다. 동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덕무현 전망대가 있는데, 과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그리고 2014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방문해 방사포 사격을 지휘했던 곳이다.
분단의 최전선에서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온 이곳의 상징성을 고려해 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다고 문화재청은 14일 밝혔다.
고성/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철수된 북쪽 지피.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른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 철수 감시초소(GP) 가운데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원형을 보존하기로 한 강원도 고성 GP를 13일 국방부가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고성 GP에서 시범 철수된 북한측 초소의 빈 터가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최동북단에 위치한 고성 GP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최초로 설치된 곳으로 북한 GP와의 거리가 580m 밖에 되지않아 남북이 가장 가까이 대치하던 곳이다. 현재 이 곳은 장비와 병력을 철수하고 작년 11월 7일을 마지막으로 DMZ 경계 임무는 공식적으로 종료된 상태다.고성/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