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첫번째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2018년 4월18일 서태평양에서 기동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력이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 다가서는 것을 거부하는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랴오닝함은 이를 위한 핵심 전력 가운데 하나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미국의 구축함과 경비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했다. 남중국해를 장악하려는 중국에 맞서 미국이 이른바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친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이들 함정의 대만해협 통과는 인도·태평양에서의 항행의 자유와 개방에 대한 미국의 다짐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중 관계와 대만해협의 안정을 훼손하는 도발이라는 중국 외교부의 비난이 이어졌다.
미국의 대만해협 통과는 올해 들어 월례행사처럼 이뤄지고 있다. 1월과 2월, 3월 연이어 24일을 전후해 작전이 펼쳐졌다. 월수 도장 찍듯이 중국을 도발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이미 대만해협 통과 작전에 투입되는 함정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대만해협에 항공모함을 들여보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 항공모함은 2007년 이후 대만해협을 지나지 않았다.
일주일 뒤 중국 젠-11 전투기가 중국과 대만의 해상·공중 경계선인 ‘중간선’을 침범했다. 미국의 대만해협 통과 작전에 대한 반격이었다. 중국 전투기가 중간선을 넘어선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대만은 즉각 초계비행 중이던 전투기를 급파하는 등 비상태세에 들어갔다. 대만 외교부는 중국을 향해 “의도적이고, 무모하며, 도발적인 행동”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미국 함정의 대만해협 통과는 중국의 이른바 ‘반접근지역거부’ 전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이 지역에 미국의 군사력이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정교한 레이더와 장거리 미사일을 연안 지역에 집중배치함으로써 미국의 항공모함이나 전투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투사력을 제약하려는 전략이다.
미국의 전략은 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2012년 발표한 국방전략지침을 통해 미래 국방전략의 중심을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에 대한 대응으로 전환했다. 이 지침에 따라 2014년 수립된 국방전략이 이른바 ‘3차 상쇄전략’이다. 군도 방어, 원해 봉쇄, 연안 통제라는 단계적 접근을 통해 중국에 거꾸로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최종적으로 중국군 지휘통제체제를 스텔스기로 타격해 마비시키는 군사행동까지 상정한다.
군사전문가들은 이런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대결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두 나라가 직접 부딪치지 않더라도 미국의 동맹국 또는 우호국이 중국과 충돌하고, 여기에 미국이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미국의 대만해협 통과 작전이 대만과 중국의 충돌로 번지고, 이것이 미국과 중국의 승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은 1995~1996년 군사적으로 충돌한 적이 있다.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가 리덩후이 대만 총통의 입국을 허용한 게 도화선이 됐다. 중국은 대만 영해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인민해방군 12만명을 대만해협 건너편 푸젠성에 배치했다. 대만은 중국의 상륙작전에 대비해 준전시태세에 들어갔다. 위기가 격화하자 미국은 니미츠 항공모함을 대만해협에 투입하고, 페르시아만에 있던 제7항모전대까지 불러들였다.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군력 동원이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무력시위에 중국이 물러서면서 위기는 가라앉았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은 이런 경험 속에서 단련된 것이다. 중국은 당시 미국의 군사력이 대만해협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절치부심한 중국은 이후 무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 당시 미국 항공모함의 가공할 위력을 절감한 게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함 건조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전략이 충돌할수록 남북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미국의 접근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다. 한반도 남쪽에 미군이 주둔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한반도 비핵화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일치하더라도 군사전략 측면에선 셈법이 엇갈릴 수 있다. 미국의 상쇄전략에 발맞춰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군비 증강에 나서면서 남북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외롭게 만들 수도 있다.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거리는 지도에서보다 훨씬 가깝다.
유강문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