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12일 평택 험프리스 기지에서 내외신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종료하면 우리가 약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주한미군사령부 제공
23일 0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미국의 연장 압박이 거세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처가 풀리지 않는 한 지소미아 종료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문재인 정부가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천명했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연장을 강요하는 태도를 거두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의 핵심 동맹이라는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의 압박은 15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등 미국 국방부와 군의 고위 인사가 총출동한다. 공식 의제는 한반도 안보 정세 평가 및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등이지만, 관심은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에스퍼 장관을 면담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자리에서도 지소미아가 주요하게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이미 압박을 기정사실화했다. 13일 방한한 밀리 의장은 전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지소미아 연장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그는 13일치 <니혼게이자이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한-일과 한-미, 미-일에 쐐기를 박고 싶어 하는 중국과 북한의 기대대로 된다”며 “‘실효(종료) 안 되게 하겠다’가 한국 쪽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에이브럼스 사령관도 12일 평택 주한미군 기지로 내외신 기자들을 불러 “지소미아가 없으면 우리가 예전처럼 강하지 않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위험이 있다”며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방침에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의 결정에 미국이 이처럼 줄기차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한-미 동맹 역사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다. 미국은 지난 8월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직후 공개적으로 ‘강한 실망과 우려’를 나타낸 뒤 지속적으로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까지 나서 “지소미아는 한·일이 풀어야 할 문제로 한-미 동맹과 전혀 관계없다”고 밝혔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청와대가 지소미아 종료 원칙을 명확하게 정리했는데도, 미국 관리들이 계속 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하는 것은 그만큼 지소미아가 미국의 이익에 절박한 것이라는 속내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의 속내는 지소미아 연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주변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는 데서 드러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주변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밀리 의장은 “한국을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분명히 중국과 북한에 이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소미아 연장 요구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닿아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이수형 연구위원은 “지소미아는 결국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삼각 협력을 이어주는 고리임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2016년 한국에 한-일 지소미아 체결을 요구하면서 ‘지소미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한 것과 다르다. 지소미아 체결이 결국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이는 지소미아 연장이 단순히 한·미·일 안보협력의 복원을 넘어 중국에 맞서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결합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런 전략이 근본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한국의 이익을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추가로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3불 원칙’과도 충돌한다.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과도 어긋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미국은 지금 한-일 갈등을 중재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움직이는 것”이라며 “한국은 동북아 안정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태도는 올해 종료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50억달러에 육박하는 분담금을 요구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미국은 한국을 본보기 삼아 대폭 증액을 관철시킴으로써 다른 동맹국들의 저항을 미리 차단하려 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해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최근 ‘한국 정부는 더 낼 능력이 있고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며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역시 한국의 합리적이고 공평한 분담 원칙에 대한 배려는 없다.
결국 미국의 요구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을 강력하게 포섭하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 포위망에 동맹국들을 끌어들이고, 거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도 부담하게 하려는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국의 핵심적 목표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전면적으로 동참하게 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한국의 지소미아 유지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이 필요한 것”이라고 짚었다.
한국 보수 언론과 정치권에선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며 한-미 동맹 위기론을 부추기고 있다. 지소미아가 한국의 원칙대로 종료될 경우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 연구위원은 “미국 안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관계를 훼손하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며 “지소미아가 종료된다고 주한미군이 철수할 거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강화하거나, 전작권 전환을 지연시키거나, 첨단 군사장비 도입을 제한하는 등으로 미국이 불만을 표시할 가능성은 있다”고 지적했다.
유강문 박민희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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