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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논썰] 김일성부터 리설주까지, 그들이 ‘죽었다 살아나는’ 이유

등록 2021-02-20 08:59수정 2021-02-20 23:35

유튜브 등 건강이상·파경·탈북 ‘아무말 대잔치’
김정은과 공개석상 나오자 눈 녹듯이 사라져
장삿속 ‘아니면 말고’식 북한 보도 이젠 그만!

논썰 / 리설주 안 보이면 무조건 신변이상’? 한겨레TV
논썰 / 리설주 안 보이면 무조건 신변이상’? 한겨레TV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1년 1개월 만에 다시 북한 언론에 등장했습니다. 리설주 여사가 1년 넘게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자, 유튜브 등에선 건강이상설, 김정은 총비서와의 불화설, 탈북설 등 온갖 억측이 쏟아졌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리설주 여사가 2월16일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기념공연을 관람했다고 17일 보도했습니다. 노동신문은 김 총비서와 리설주가 공연을 보며 함께 웃는 사진도 여러 장 실었습니다. 앞서 리설주가 2013년에 2달, 2016년에 9달, 2019년에 4달 동안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을 때도 부부 불화설, 파경설 등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리설주가 공개 활동을 재개하자 신변이상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리설주가 2013년에 2달, 2016년에 9달, 2019년에 4달 동안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을 때도 부부 불화설, 파경설 등이 나왔다. 한겨레TV
리설주가 2013년에 2달, 2016년에 9달, 2019년에 4달 동안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을 때도 부부 불화설, 파경설 등이 나왔다. 한겨레TV

국정원 “리설주 아이들과 잘 놀고 있다”

그럼 리설주는 1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은 2월1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약 1년간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것과 관련한 특이점은 없으며, 아이들과 잘 놀고 있고 코로나로 인해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추론된다.”

이번에는 코로나 방역 조처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건강 상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 총비서와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리설주가 코로나 감염을 막으려고 공개 활동을 접었다는 겁니다. 리설주가 지난해 1월25일 삼지연 극장에서 설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한 이후 보이지 않았는데, 이 시점이 국제적으로 코로나가 본격 확산하던 시기여서 이런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리설주가 지난해 1월25일 삼지연극장에서 설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한 이후 보이지 않았는데, 이 때는 국제적으로 코로나가 본격 확산하던 시기였다. 한겨레TV
리설주가 지난해 1월25일 삼지연극장에서 설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한 이후 보이지 않았는데, 이 때는 국제적으로 코로나가 본격 확산하던 시기였다. 한겨레TV

그렇다면 유튜브들은 무슨 근거로 리설주의 신변이상설을 제기했을까요. 유튜브들이 이런 주장을 쏟아냈을 때, 전문가들은 근거가 없거나 낮다고 봤습니다. 전문가들이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뒤에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리설주뿐만 아니라 북한 주요 인사들이 공개 석상에서 오래 안 보이면 신변이상설이 자동으로 등장합니다. 요즘에는 특히 유튜브를 통해 이런 주장이 빠르게 퍼집니다. 지난해 4월에도 김정은 총비서가 20일간 북한 언론에서 안 보이자 건강 이상설, 권력 암투 쿠데타, 주요 인사 처형·숙청설 등이 나왔습니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때도 이런 억측, 오보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사망설, 2013년 8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총살설 등이 대표적입니다.

1986년 11월17일 조선일보 호외. 언론 역사에서 세계적인 오보 중 하나로 꼽힌다. 한겨레TV
1986년 11월17일 조선일보 호외. 언론 역사에서 세계적인 오보 중 하나로 꼽힌다. 한겨레TV

가짜뉴스 쏟아내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북한 보도’

왜 북한을 두고 이런 억측과 오보가 수십년 간 끊이지 않는 걸까요. 먼저 북한이 폐쇄된 사회라 믿을 만한 정보가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비정상 깡패 국가’나 ‘악마 집단’으로 보고, 빨리 망하기를 바라는 ‘희망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니 뭔가 이상한 일이 자꾸 벌어져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북한 보도에는 사실상 기자들에게 ‘면책특권’이 있습니다. 오보를 해도 북한이 공식 항의하거나 손해배상, 명예훼손 등 민형사 소송을 걸지 않으니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오보를 정정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보수언론이 자극적인 북한 보도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유튜브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일부 유튜버가 북한을 선정적으로 다루고 조롱거리로 삼거나 김정은 위원장의 사생활, 권력 암투설 등을 놓고 ‘믿거나 말거나’ 식의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튜버에게 리설주 신변이상설은 페이지뷰를 올려 돈이 되는 장사거리라는 겁니다.

그동안 리설주가 활발한 공개 활동을 펼쳤기 때문에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더 화제가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리설주는 2018년 4월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해 국내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자본주의 나라들은 국가 원수 부부가 함께 외국 순방을 떠나거나 외국 손님을 맞아 환영 만찬을 엽니다. 하지만 북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권 국가에선 일반적으로 최고지도자의 부인이 공개 석상에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김정은 총비서 이전까지 북한도 최고지도자의 부인이 공개 석상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리설주는 2012년 7월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장에 처음 공식 등장한 이후 김 총비서의 국내 공식행사뿐만 아니라 북·중 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에도 동행했습니다. 리설주는 2018년 북한을 방문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함께 중국 예술단 공연을 관람할 때는 김정은 총비서 없이 단독으로 외교행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리설주가 자본주의 국가들의 퍼스트레이디처럼 독자 외교 활동까지 펼쳐 눈길을 끌었습니다.

리설주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해 화제가 됐다. 한겨레TV
리설주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해 화제가 됐다. 한겨레TV

리설주가 2018년 북한을 방문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함께 중국 예술단 공연을 관람했을 때 김정은 총비서 없이 단독으로 외교행사에 나섰다. 한겨레TV
리설주가 2018년 북한을 방문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함께 중국 예술단 공연을 관람했을 때 김정은 총비서 없이 단독으로 외교행사에 나섰다. 한겨레TV

‘퍼스트레이디 리설주’, 비정상국가 낙인 지우기 노력

북한이 관례를 깨고 리설주를 공개행사에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독재국가, 비정상 국가란 나쁜 이미지를 벗고 정상 국가로 보이기 위한 의도적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59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가 ‘평화 공존’을 내세워 방미했던 때를 연상시킵니다. 당시 흐루쇼프는 국제사회에서 거친 언행으로 악명이 높았는데요, 그는 이례적으로 부인 니나를 방미에 동반했습니다. 니나는 평범하고 소박해서 미국 사람에게 큰 호감을 줬습니다. 니나는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고 흐루쇼프의 기괴한 이미지와 대조되는 온화한 모습이었습니다. 흐루쇼프 부부를 접한 미국 국민들은 ‘소련 사람들이 뿔 달린 도깨비가 아니구나. 피도 눈물도 없는 줄 알았던 공산당 우두머리도 평범한 여성의 남편이었네. 우리처럼 사는 보통사람이다. 어쩌면 흐루쇼프와도 대화가 통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의 부인 니나 페트로브나. 한겨레TV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의 부인 니나 페트로브나. 한겨레TV

이제 건강이상설, 불화설, 탈북설 등 리설주 신변이상설의 근거가 처음부터 희박했던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2019년 12월 리설주가 남편과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던 과거 영상을 지난 1월 북한 텔레비전이 그대로 재방송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리설주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면 북한의 각종 선전기록, 영상, 인터넷 기사 검색에서 리설주 관련 내용이 삭제 편집됐어야 합니다. 북한은 고위 인사를 처형, 숙청한 뒤에는 출판물, 영상물, 기사 등에서 이름과 사진, 내용을 삭제해왔습니다. 공식 기록에서 흔적을 깨끗하게 지웁니다.

‘아니면 말고’ 식 북한 보도 이제 그만해야

이런 점은 2013년 12월 장성택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숙청 확인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장성택 실각설이 사실로 바뀐 계기가 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이 2013년 12월7일 김정은 총비서의 군부대 시찰 기록영화를 재방송하며 종전에는 나왔던 장성택 모습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다음날엔 조선중앙통신 웹사이트에서 장성택과 관련한 기사가 모두 삭제됐습니다. 북한은 그 다음 날인 12월9일 장성택 숙청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북한 관련 언론 보도와 유튜브, 이제는 신중해질 때도 됐습니다. 북한이 항의하거나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고 ‘아니면 말고’ 식 보도를 일삼는 건 정말 무책임합니다. 남북관계 개선이나 한반도 평화에 백해무익한 일입니다.

기획·출연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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