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취재’ 통하는 상황 자초한 김 여사 처신 국정 개입 시사하는 발언, ‘비선 농단’ 떠올라 선물 수수 내역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 물어야
[논썰] ‘김건희 명품 선물’ 뭉개는 대통령실, 국민의 모욕감 쌓여간다. 한겨레TV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선물 수수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김 여사와 대통령실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정확한 사실 조사와 책임 있는 해명, 그리고 엄중한 후속 조처가 필요합니다.
‘뇌물적 성격 부적절 처신’ 53% vs ‘망신주기 공작’ 27%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는 지난달 27~30일 김 여사의 명품 선물 수수와 관련한 영상들을 잇따라 공개했습니다. 김 여사가 재미동포 통일운동가 최재영 목사한테서 300만원 상당의 손가방을 받는 모습부터 최 목사가 카메라 달린 손목시계를 차고 보안검색을 통과하는 장면, 김 여사를 접견할 다른 방문객들이 쇼핑백을 들고 대기하는 모습, 김 여사가 “남북문제에 제가 좀 나설 생각”이라고 말하는 장면 등이 나옵니다.
[논썰] ‘김건희 명품 선물’ 뭉개는 대통령실, 국민의 모욕감 쌓여간다. 한겨레TV
이에 대해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론조사한 결과도 나왔습니다.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 미디어토마토 ’ 에 의뢰해 지난 2~3 일 실시한 조사 ( 전국 성인 1011 명 ,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활용한 무선 자동응답 방식 ) 에서 ‘ 김 여사 명품백 논란의 본질이 무엇인지 ’ 묻는 질문에 ‘ 뇌물적 성격이 짙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 는 응답이 53.2%, ‘ 김 여사를 망신주기 위한 공작 ’ 이라는 응답이 27.1% 였습니다 . 여론조사기관 ‘ 꽃 ’ 이 지난 1~2 일 조사 ( 전국 성인 1006 명, 무선 100% RDD 활용 자동응답 방식 ) 한 결과 김 여사 명품 가방 선물 의혹에 대해 ‘ 수사가 필요하다 ’ 는 응답이 65.8%, ‘ 수사가 불필요하다 ’ 는 응답은 28.1% 였습니다 .
명품 선물 수수도 그렇지만 그밖의 내용들도 심각합니다. 김 여사가 에스엔에스로 최재영 목사와 연락하며 비공식 접견을 하게 된 과정과 국정에 관해 나눈 대화 내용도 매우 부적절합니다. 최 목사 이외에 또다른 면담 대기자들이 있었고 이들이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추가적인 선물 수수 가능성도 의심케 합니다. 허술한 경호·보안 문제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김 여사가 권한도 없이 국정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시사하는 장면은 ‘비선 농단’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논썰] ‘김건희 명품 선물’ 뭉개는 대통령실, 국민의 모욕감 쌓여간다. 한겨레TV
‘함정 취재’와 ‘위장 취재’ 구분해야
‘서울의 소리’ 보도에 대해 ‘함정 취재’ 논란도 있습니다. 먼저 명확히 해둘 부분이 있습니다. ‘함정 취재’와 ‘위장 취재’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정 취재는 취재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법적·비윤리적 행위를 하도록 조건을 만들어주거나 부추기고 나서 그 행위를 보도하는 것입니다. 위장 취재는 취재 목적이나 신분을 숨기고 취재 대상에게 접근한 뒤 그 곳에서 관찰하거나 체험한 바를 보도하는 것입니다. 금품을 건넨다든지 하는 적극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단지 관찰자 입장에서 ‘르포’ 기사를 쓰는 것과 유사합니다.
함정 취재는 언론 윤리와 관련한 논쟁의 대상인 반면, 위장 취재는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 언론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뤄지는 전통적인 취재 기법입니다. 1887년 엘리자베스 코크레인이라는 여성 언론인이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미국 뉴욕의 여성 정신요양원에 들어간 뒤 그곳에서 벌어지는 환자들에 대한 학대를 취재·고발한 게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썰] ‘김건희 명품 선물’ 뭉개는 대통령실, 국민의 모욕감 쌓여간다. 한겨레TV
이 구분을 ‘서울의 소리’ 보도에 적용해보면, 김 여사에게 명품을 건넨 부분은 ‘만들어진 사실’로서 함정 취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밖의 부분, 즉 최재영 목사가 카메라 달린 손목시계를 차고 보안검색을 통과하는 장면, 김 여사를 접견할 다른 방문객들이 쇼핑백을 들고 대기하는 모습, 김 여사가 “남북문제에 제가 좀 나설 생각”이라고 말하는 장면 등은 위장 취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사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취재 윤리와 무관한 보도이고, 그 자체로 국정의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한 보도인 것입니다.
함정 취재에 대해서도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서구 언론계나 학계에서는 함정 취재 자체를 비윤리적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그 의도나 상황에 따라 허용가능한지 여부를 가리고 있습니다. 이를 판단할 대표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 여사에게 명품을 건넨 취재 방식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시청자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 취재의 동기가 권력 오남용으로부터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상업적 목적이었나?
● 같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다른 취재 방식은 없었는가?
● 취재에 들어가기 전, 취재 대상자가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할 충분한 근거가 있었나? 즉 의심할 만한 정황을 포착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함정 취재를 벌였나, 아니면 막연히 미끼를 던져보는 것이었나?
● 취재 과정에서 동원된 방법이 적정했나, 아니면 지나치게 괴롭히거나 강압적인 방식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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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공공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만큼 시청자와 독자, 즉 수용자들의 판단이 중요할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여론조사기관 ‘꽃’의 조사에서, 함정 취재 논란과 관련해 ‘ 공익적 측면이 더 커 용인되어야 한다 ’는 응답이 58.3%, ‘ 목적을 갖고 접근한 함정 취재는 용인해선 안 된다 ’는 응답이 31.5% 로 각각 나왔습니다 .
“의혹 내용 모르겠다”는 한동훈 장관
취재 윤리 논란이 문제의 본질을 피해가는 핑계거리가 돼선 안 됩니다. 이번 사안을 좀더 본질적으로 보자면, 함정 취재든 위장 취재든 그것이 통하는 상황을 김 여사와 대통령실이 초래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런 취재가 실현됐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김 여사가 대통령 부인으로서 처신에 조심했다면, 대통령실도 김 여사의 일정과 외부인 접촉을 과거 정부에서처럼 관리했다면, 보안·경호 등이 원칙적으로 이뤄졌다면, 최 목사가 명품 선물을 들고 대통령 부인을 만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쇼핑백을 들고 김 여사 면담을 기다리던 또다른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대통령 부인의 금품 수수 의혹, 그리고 경호·보안 등 여러 문제점이 노출됐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아무런 공식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명품 선물은 반환하기 위해 대통령실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익명 관계자의 설명이 고작입니다. 국민의힘도 지난 6일 대통령실을 상대로 명품 선물 논란 등을 따지기 위해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를 거부했습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금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문제, 우리가 대통령 비서실의 답처럼 그런 반환 창고가 있는지 가서 현장 검증도 하고 그런 창고에 대체 뭐가 있는 건지 더 많은 물건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 (6일 국회 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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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와 관련한 질문에 평소와 달리 답을 피했습니다.
기자: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혹시 장관님 생각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제가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뭐 특별히 언론에서도 상세한 보도가 안 나왔기 때문에 제가 내용을 잘 알지 못합니다.
기자: 그럼 수사가 필요하다면 수사는.
한동훈: 너무 가정을 가지고 계속 물어보시면 그건 뭐. (6일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 참석 뒤)
청탁금지법 위반 조사하고 특별감찰관 임명해야
대통령실과 여당, 정부 모두 문제를 회피하는 데 급급합니다. 그런다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선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문제가 있습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가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1회 100만원, 한해 3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3년 이하 징역·3천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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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위야 어떻든 김 여사가 최 목사한테서 명품을 받은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청탁금지법상 금지된 행위를 한 것입니다. 누군가 부추겨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범죄 행위 자체가 면책되지는 않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해당 동영상을 통해 김 여사가 또다른 선물들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김 여사가 받은 선물 내역을 모두 조사해 공개해야 합니다. 위법한 선물이 있었다면 법적 책임도 져야 합니다. 선물을 반환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다는 대통령실 해명을 믿더라도, ‘지체없이 반환해야 한다’는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법 위반이 분명히 드러났는데 아무런 조처가 없다면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아마 국가공무원 아내 중에 이렇게 명품백을 받았고 언론에 이런 의혹이 제기됐으면 바로 수사를 들어갔을 겁니다. 왜 김건희 여사만 제외가 되어야 되는지 의문입니다. (6일 국회 운영위원회)
미국에선 아예 대통령과 배우자가 받은 일정 액수 이상의 선물은 모두 정기적으로 공개하도록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선물 등 금품 수수가 국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투명한 절차를 만든 것입니다. 이참에 우리도 이런 규칙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번 사태는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을 폐지한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공식적인 체계를 통해 김 여사의 활동을 관리하고 기록을 남기고 적절한 통제도 해야 합니다. 또 대통령 배우자와 친족 등을 감시하는 특별감찰관도 서둘러 임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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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리스크…국민 의문에 답해야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석·박사 학위 표절 및 경력 위조 의혹 등 숱한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자 대선 당시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조용한 내조’를 공개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허언이었습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대통령 관저 리모델링 회사가 김 여사 사업체의 후원 업체였다든지, 김 여사 일가의 땅이 있는 쪽으로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이 바뀐다든지, 리투아니아 방문 중 명품 쇼핑을 한다든지 하는 여러 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습니다.
여야가 12월 임시국회를 열기로 합의했는데, 20일과 28일 예정된 본회의에서는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이 상정될 전망입니다.
윤 대통령이나 여당 입장에선 ‘대통령 부인 리스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민주주의에 대한 리스크’로 느껴집니다. 최고 권력을 가진 공직자의 부인이 여러 의혹에 휩싸여 있는데 아무런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국민 앞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민주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문에 답할 책임이 있습니다. 대통령실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국민이 주권자로서 느끼는 모욕감은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