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저도 육군 병장 만기 제대했는데 군인들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김만섭(송강호 분)은 택시를 몰고 광주에 도착해서 ‘군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구 패고 칼로 찌른다’는 말을 듣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계엄군. <한겨레> 자료 사진
저도 1980년대 대학에 입학해 5·18 참상을 고발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사진들을 보면서, 비슷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올해로 5월 항쟁 41주년인데요, ‘왜 군인이 국민들에게 총을 쏘았을까’란 의문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이 지난 2월19일 양곤의 주미얀마 한국대사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제발 우리들 좀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있다.
“제발 우리들 좀 살려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미얀마 상황을 보면서 이 의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지난 2월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항의하는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고문하고 있습니다. 군경이 시위대 머리를 조준 사격하고 박격포까지 쏘았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왜 이렇게 잔인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미얀마에선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데다 미얀마 군부가 일반 국민과 동떨어진 ‘국가 속의 국가’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문민통제는 상식입니다. 문민통제는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 대통령과 민간인 국방장관이 안보 정책을 결정하고, 안보전문가 집단인 군은 군사작전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군 통수권을 주고 현역 군인은 국무위원(장관)에 임명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이 때문에 육군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 같은 현역 장군이 국방장관에 취임하려면 먼저 군복을 벗고 전역을 해야 합니다. 미국은 더 엄격해 현역 군인은 전역한 뒤 7년이 지나서야 국방장관을 맡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87조
미얀마 헌법 제20조
군부가 민간을 지배하는 ‘군민통제’
그러나 미얀마는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미얀마 헌법을 보면, 군 통수권이 대통령이 아닌 군 총사령관에게 있습니다. 부통령급인 군 총사령관은 군 최고 지휘관입니다. 미얀마 군 총사령관은 우리로 치면 합참의장에 해당하는데,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합니다. 군 총사령관은 대통령이 국방안보위원회(NDSC)의 제안과 승인을 받아 임명합니다. 국방안보위원회는 11명 중 5명이 군부 인사입니다. 군부가 자기 우두머리를 스스로 임명하는 겁니다. 군 총사령관이 국방장관, 안보내무장관, 국경장관 3개 장관 후보자를 지명합니다. 군 총사령관이 지명한 3개 부처 장관은 군복을 벗지 않고 현역 군인 신분을 유지합니다. 군 총사령관 계급이 별 다섯개인 원수인데, 국방장관은 별 세개인 중장입니다. 국방장관이 군 총사령관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미얀마는 민간이 군을 통제하는 문민통제가 아니라, 군부가 민간을 지배하는 ‘군민통제’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개헌을 해야 하는데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미얀마 의회는 양원제로 국민의회와 민족의회가 있습니다. 군 총사령관은 국민의회 440명 중 4분의 1인 110명을 지명하고, 민족의회 224명 중 4분의 1인 56명을 지명합니다. 전체 의회 의석의 25%를 군부가 자동으로 확보합니다. 개헌을 하려면 75% 넘는 국회의원 동의가 필요한데, 25%를 차지하는 군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개헌을 할 수 없습니다.
미얀마 군 총사령관은 국민의회 440명 중 4분의 1인 110명, 민족의회 224명 중 4분의 1인 56명을 지명한다. 전체 의회 의석의 25%를 군부가 자동으로 확보한다.
한국의 ‘하나회’와 미얀마의 ‘탓마도’
‘탓마도’(tatmadaw)라고 불리는 미얀마 군부는 이처럼 수십년 동안 감시와 견제 없이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습니다.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전두환 등 신군부 정치군인들이 ‘하나회’란 사조직을 통해 쿠데타에 성공해 기세등등했던 모습과 비슷합니다. 한국 군부의 하나회는 문민정부 이후 사라졌지만, 미얀마 군부는 ‘전군이 하나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2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미얀마의 독재자 네 윈
‘미야마 군이 왜 그렇게 잔인할까’란 의문을 풀려면 미얀마 군부의 역사적 경험, 민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고립된 세계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영국 통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청년 그룹이 중심이 되어 1941년 12월 창설된 미얀마군은 1948년 미얀마가 영국에서 독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누를 행정수반으로 한 미얀마의 첫 독립 민간정부가 소수민족 문제, 내부 분열 등으로 혼란에 빠지고 무능을 드러내자, 미얀마 군부는 민간정부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군 총사령관인 네 윈(1911~2002)이 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 및 국방부 장관을 맡아 내각의 실력자로 국정을 이끌었습니다. 1962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군인들로만 구성된 혁명위원회를 꾸려 행정·입법·사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네윈은 1988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사회질서와 국가안전을 내세워 자신의 독재 통치를 정당화했습니다. 2011년 민간 과도정부가 들어섰지만 군부의 힘은 여전합니다, 네윈보다 한해 앞서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도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부가 궐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과 미얀마, 두 나라 군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언행을 한 것입니다.
인구 5300만명인 미얀마는 70%의 버마족(불교)과 30%의 다민족(기독교, 이슬람교)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소수민족과의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미얀마의 군 병력은 45만명입니다. 병력 규모로 세계 12위입니다. 미얀마 군은 중국, 태국 등 주변 5개국과 5900km 국경선, 2000km가 넘은 해안선을 방어합니다. 인구 5300만명인 미얀마는 70%의 버마족(불교)과 30%의 다민족(기독교, 이슬람교)으로 구성된 연방국가인데, 소수민족과의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얀마 군의 다수는 버마족입니다. 미얀마 군은 수십년 동안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소수민족과 전투를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약탈, 살육, 성폭력 등을 저질러 악명이 높습니다. 미얀마 군은 자신들이 없으면 이슬람교 등을 믿는 소수민족에게 국가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민주화 시위에 동참한 버마족을 부화뇌동하는 세력으로 취급합니다. 1980년 전두환 등 신군부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폭도나 공산주의세력으로 왜곡하면서, 시위를 진압하지 않으면 한국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것이라며 쿠데타를 합리화한 것과 비슷한 논리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 보도한 <조선일보> 지면. 김대중 전 고문이 1980년 5월 사회부장 시절 쓴 기사다.
권력·무력뿐 아니라 돈줄까지 장악한 미얀마 군부
미얀마 군부는 무력과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돈줄도 쥐고 있습니다. 군은 통신사, 차, 커피, 병원 등 돈이 되는 국영기업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돈 많은 미얀마 군부는 군인들의 처우와 복지를 두둑하게 챙겨줍니다. 미얀마 군인들은 군인 가족끼리 결혼을 많이 합니다.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 상당수는 대를 이어 군인이 됩니다. 병역제도가 징병제이긴 하지만, 다양한 계층과 사회적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지 않고 특정 계층이 주로 입대한다고 합니다.
미얀마 군부의 잔혹한 진압은 이들이 스스로를 국민과 분리된 ‘국가 속의 국가’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미얀마 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부대 기지나 그 근처에서 모여 생활합니다. 군인들과 가족들의 일상은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습니다. 군인들은 민간사회와 단절돼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이념을 주입받고 그들만의 복지 혜택을 누리며 대를 이어 군인으로 생활합니다. 이들은 민간인에 대한 불신이 크고 스스로를 ‘국가와 불교의 수호자’로 여기며 비뚤어진 ‘특권 엘리트주의’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민주화 시위대와 소수민족을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닌 ‘국가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80년 5월 광주에서 공수부대가 시민을 붙잡았을 때 도망가지 못하도록 옷부터 벗겼는데, 이는 광주 시민을 적군 포로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을 적군 포로로 취급한 계엄군. <한겨레> 자료 사진
미얀마 군인은 상급자가 내린 명령이면 그 명령이 정당한지 물을 수 없고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미얀마 군부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을 연상시킵니다. 당시 독일군은 히틀러와 나치를 위한 군대로 존재했으며, 위험한 전체주의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충성 속에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나치 독일군은 뛰어난 전투력을 자랑했지만 곳곳에서 성폭력, 약탈, 민간인 학살 등 비인도적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온 독일군 장병들은 가족들로부터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느냐”는 질책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했다”고 답했습니다. 1955년 서독이 창설한 독일연방군은 나치 독일군이 자행한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문민통제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 존엄성이나 인권을 해치는 명령을 받을 경우 불복종 권리를 주고, 그런 명령을 내린 상관을 신고하도록 했습니다. 이게 ‘내적 지휘’로, 독일연방군의 공식 지휘원칙입니다.
광주처럼 미얀마도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을 것’
미얀마 군부는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반면교사입니다. 문민통제가 먹통이 되면 국민들이 군인에게 믿고 맡긴 총구가 국민을 겨누는 비극이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비극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 같지만, 과연 그럴까요. 2017년 초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기무사가 검토했던 계엄령이 실제 실행됐다면, 서울 한복판에서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쿠데타에 맞서 100일 넘게 민주화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한국이 우리와 같은 일을 겪었다’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우리 국민들도 “1980년 광주와 2021년 미얀마가 다르지 않다”며 지지와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광주에서처럼 미얀마에서도,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믿습니다.
기획·출연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