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정상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하고 있다. 이 시간은 돌아올 수 있을까. 판문점/연합 조선중앙통신
북이 한-미 미사일 지침을 종료하며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풀어준 미국의 결정에 대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비난했다. 지난 2019년 2월 말 ‘하노이 결렬’ 이후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의 열쇠’라고 불러온 만큼 이 말에 담긴 북의 속내를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31일 공개한 ‘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의 개인 명의 논평을 통해 미국이 승인한 미사일 지침 종료를 “고의적인 적대행위”라 부르며 “우리의 자위적 조치들을 한사코 유엔 ‘결의’ 위반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추종자들(남을 지칭)에게는 무제한한 미사일 개발 권리를 허용하고 입으로는 대화를 운운하면서도 행동은 대결로 이어가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이것은 미국이 매달리고 있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사일 지침을 종료하면서 남에게는 마음껏 탄도 미사일을 개발할 권리를 허용하고, 자신들의 움직임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내세워 불법화하는 미국의 이중적 태도를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중적 표현”이라 비난한 것이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개인 명의의 글인 만큼 정부가 직접 논평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일부 전문가는 오늘 글이 발표의 형식으로 볼 때 수위가 낮다는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결렬’ 직후인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우리와 미국의 대치는 어차피 장기성을 띠게 되어 있으며 적대세력의 제재 또한 계속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기존의 ‘제재 해제’ 요구를 내려 놓고, ‘적대시 정책 철회’를 새로운 대미·대남 요구로 제시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적대시 정책의 내용을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이미 중단하게 된 합동군사연습의 강행”과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강도적 (비핵화) 요구” 등이라 설명한 바 있다. 북한은 이 무렵 한국에 배치되기 시작한 F-35 등 첨단무기들의 반입 등에 대해서도 ‘적대시 정책’이라 부르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김여정 부부장은 이어 지난해 7월10일 내놓은 장문의 담화에서 2019년 6월30일 판문점 회담 이후 “우리는 제재 해제 문제를 미국과의 협상의제에서 완전 줴던져버렸다. 나는 ‘비핵화조치 대 제재해제’라는 지난 기간 조미협상의 기본주제가 이제는 ‘적대시철회 대 조미협상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김여정 부부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인 3월30일 담화에선 “북과 남의 같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한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놓고 저들(남)이 한 것은 조선반도 평화와 대화를 위한 것이고 우리가 한 것은 남녘 동포등의 우려를 자아내고 대화 분위기에 어려움을 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니 그 철면피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분노했었다. 말은 거칠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미국과 남한 당국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로남불 논리’만 내세우지 말고 북이 느끼는 안보 위협에도 정당한 배려를 해달라는 말이라고 해석 가능하다. 즉, 북이 말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란 한-미 연합훈련 중지와 자신들에게만 안보 희생을 강요하는 내로남불 논리를 거둬들이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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