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양구 백석산에서 발굴된 고병수 하사의 유해. 국방부 제공
“전쟁의 비참함은 겪어 보지 않을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겁니다. 전사자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지켜진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70년 만에 전해진 오빠의 소식 앞에서 올해 여든이 넘은 여동생 고병월(86)씨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10년 전 강원도 양구 백석산에서 발굴된 왼쪽 정강이뼈의 주인이 70년 전 헤어진 오빠 고병수 하사(1931~1951)라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이 뼈에서 추출한 유전자 정보와 유가족들이 지난해 제공한 유전자 정보가 일치해 오래 전 이별했던 오누이의 혈연 관계가 확인됐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슴 저린 해후였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18일 강원도 양구 백석산에서 2011년 6월 발굴된 6·25 전사자 고병수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고 하사는 1931년 8월20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장남인 고 하사는 부친을 일찍 잃은 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전쟁이 터진 뒤엔 미군부대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고 하사가 “군에 참전해 나라를 지키겠다”고 말한 뒤 12월8일 입대해 한주 동안 군사 훈련을 받고 전방에 배치됐다고 증언했다. 고 하사는 이후 이듬해 있었던 백석산 전투(1951년 8월18일∼10월1일) 때 숨을 거둔 것으로 확인된다. 이 지역은 남북 간에 치열한 교전이 이뤄졌던 동부전선의 대표적 전략 요충지였다. 이곳에서만 총 500여구의 유해가 발굴돼 1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이는 총 165명(올해 8명)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해부터 과거에 대량으로 유해가 발굴되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자료를 재분석하고 전사자 유가족들을 집중 탐문하고 있다. 이번에 고 하사의 신원이 확인될 수 있었던 것도 지난해 9월 국방부 탐문관이 유가족들의 자택을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기 때문이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고 하사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연 뒤 국립현충원에 유해를 안장할 예정이다.
전사자 유해와 관련된 제보나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채취 참여 문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전화 1577-5625(오!6·25)로 하면 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고 하사의 유해와 함께 발굴된 천 조각. 국방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