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제104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 과거사와 관련된 현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법’을 6일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 기업이 가해 기업을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방식이다. 정작 가해 기업은 사과도, 배상도, 참여도 없다.
정부가 ‘해법’으로 내놓은 ‘제3자 채무 인수’ 방안이란,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배상 책임을 진 일본 가해 전범기업의 채무를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인수해, 포스코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수혜 한국 기업을 상대로 기부금을 걷어 피해자한테 나눠주는 방식이다. 가해자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데, 피해자끼리 이리저리 부산한 형태다. 윤석열 정부는 이 돈을 “판결금”이라 부른다. 언어도단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한-일 청구권 협정은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며,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이 피해자 개인에게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명시했다. 이번 ‘해법’은 행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전면 부인하는 셈이다. 또 ‘식민지배는 불법’이라는 우리 헌법 질서를 정부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전경련-경단련(게이단렌)의 ‘미래청년기금’ 조성 방안은 논점 이탈이다. 강제동원 피해와 한·일 기업 장학금 받아 일본 유학 가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나. 전형적 물타기다.
왜 이런 ‘해법’을 내놓았는지 모르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협력, 수출규제 완화, 한-일 관계 해결 등이 시급한데, 일본은 꿈쩍도 않는다. 그러나 백기투항식 ‘해법’은 오히려 한-일 관계를 더 해칠 수 있다.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위안부 합의’ 때도 이번과 똑같았다. 왜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나.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 해결책을 마련하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역사 반성이 담긴 과거 담화 계승을 표명하는 방향으로 조율에 들어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4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지금껏 과거 정부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다.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마련하면’, 일본 총리가 ‘예전대로’라고 말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요구해왔는데, 한국이 일본에 ‘성의 있는 호응’을 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꼴이다. 역사 문제는 “좋아, 빠르게 가”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역사는 일개 정부의 독점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