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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이상우-김태효-윤석열, 국익보다 이념 따지는 위험한 외교

등록 2023-05-28 07:30수정 2023-05-28 16:01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82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회담에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안보실 2차장, 최상목 경제수석.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회담에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안보실 2차장, 최상목 경제수석.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상승세입니다. 최근 발표되는 대통령 직무 여론조사 수치를 보면 ‘긍정 평가’는 높아지고 ‘부정 평가’는 낮아지는 흐름입니다. 부정 평가가 여전히 높긴 하지만 민심의 이런 변화는 윤 대통령에게 상당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것 같습니다.

지난 23일 방송으로 생중계된 국무회의 머리발언 장면을 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목이 잠겨서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도 시종 자신에 찬 표정으로 주요 7개국 정상회의 성과를 자랑했습니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해 긍정 평가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외교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부정 평가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봐도 역시 외교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외교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민간 영역이 큰 경제와 달리 외교는 거의 전적으로 대통령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이른바 보수 정당 소속인 윤 대통령 당선으로 우리나라가 외교 정책의 큰 방향을 바꿀 것이라는 점은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자유·법치 외교’

그러나 외교에 대한 윤 대통령의 관점에는 한가지 치명적 결함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봐야 할 외교 정책을 지나치게 극우 이념적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런 극우 이념적 시각을 보편적 가치와 국제규범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그런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모든 외교 행위는 자유와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와 국제규범에 기반해야 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기반해야 합니다.”

“급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글로벌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우선,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바로 세우고, 우리 사회 전반을 재정비해 무너진 국가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합니다.”

“이념에 매몰된 반시장적 정책으로는 지정학적 갈등,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 공급망 교란과 기후 환경 위기와 같은 지금의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자유와 법치를 보편적 가치와 국제규범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모름지기 보편적 가치와 국제규범이라고 하면 생명, 인권, 평화,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와 ‘법치’는 극도로 이념적인 단어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수십년 동안 자유와 법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독재를 했습니다. 지금도 극우 세력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자유와 법치입니다.

윤 대통령이 ‘자유’와 ‘법치’를 자신의 기본적인 가치관으로 삼은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고, 법학을 공부한 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유와 법치의 이념을 갑자기 국제정치 무대로 확장한 이유가 뭘까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평생 검사만 했던 윤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는 문외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의문을 설명해줄 수 있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정권 내부에 있고, 한 사람은 정권 외부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긴밀히 연결돼 있습니다.

첫번째 인물은 김태효(56) 국가안보실 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입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실세입니다. 대통령실 사람들이나 국민의힘 의원들, 외교부·통일부·국방부 공무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성균관대 교수 출신인 김 차장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과 수석급인 대외전략기획관으로 4년5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외교·안보 실세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도 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2년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협상 논란으로 물러났는데, 10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으로 정권 핵심에 복귀했습니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이 살던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이웃 주민이었습니다.

정권 출범 초기에 “외교·안보 분야 인사는 김태효가 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조현동 주미대사, 이도훈 외교부 2차관, 임종득 안보실 2차장이 이명박 대통령 시절 김 차장과 함께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4월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4월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우 “국익 아닌 이념이 동맹 기준”

두번째 인물은 이상우(85)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입니다.

이 이사장은 서강대 교수, 한림대 총장을 지냈고 역대 보수 정권의 외교·안보 분야 ‘지도교수’ 역할을 해온 원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 국방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위원장,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을 했습니다.

신아시아연구소는 그가 1993년 설립한 사단법인입니다. 학계에는 ‘신아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했던 현인택 전 장관이 소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부소장입니다.

이 이사장은 김 차장의 서강대 스승이었고, 평생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사람들은 “학술적으로나 이념적으로 김태효 차장이 이상우 이사장의 ‘수제자’나 다름이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신아연 인터넷 누리집에는 이 이사장의 인사말이 이렇게 올라 있습니다.

“신아연은 새로운 세기에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될 아세아(아시아)의 신질서 구축 작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나라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는 새로운 아시아의 평화 질서를 만드는 곳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월간조선> 2022년 10월호에 이 이사장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21세기 냉전의 핵심은 이념과 체제’라는 제목입니다. 저는 뒤늦게 이 기사를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윤 대통령이 최근 강조하는 ‘가치 외교’의 원전을 여기서 상당 부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냉전의 핵심은 군사력보다 이념과 체제다. ‘인권이 보장된, 자유를 최고 가치로 하는 자유민주 공화정을 보편 가치로 굳히려고 하는 세력’인지 여부, 즉 좁은 의미에서의 국익이 아니라, 이념이 동맹의 기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중국 눈치 보고 양다리 걸치기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자살행위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다.”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관계, 즉 서로가 필요할 때 필요한 부분만 협력하는 관계로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 편’이라고 선을 딱 긋고 가야 한다.”

“외교는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외교를 위해 국가 정체성을 포기한다면 이는 주객전도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것이 우리의 국가 목표이고 헌법적 가치다. 이를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걸 조정해야 한다. 외교에서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우리가 분명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이사장의 주장은 윤 대통령이 최근 쏟아내는 말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8월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온 분들>이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포함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최근 김 전 장관을 국방혁신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런 점들로 미뤄 보면 이 이사장의 외교와 국제정치에 대한 생각이 김 차장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거나, 아니면 적어도 강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가치 외교’ 우려는 커지는데…

걱정입니다. 이 이사장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21세기를 다시 냉전의 시대로 보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외교는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도 일종의 궤변이라고 봅니다.

이 이사장의 주장은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 ‘네오콘’들의 대결적 사고와 똑 닮았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 이사장의 극단적 노선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우리나라와 국민을 큰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사태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 이른바 보수 신문에서도 미국과 일본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윤 대통령의 ‘가치 외교’에 대해 우려하는 글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지난 24일치 사설의 제목은 “한·미·일 안보 다졌으니, 이젠 ‘중국 리스크’ 잘 관리해야”였습니다. 부제는 “G7, 중국 비판하지만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킹’”, “미·일처럼 윤석열 정부도 중국과 대화 모색해 가길”입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 이사장이나 김 차장 같은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잘 잡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나라와 국민이 좀 더 안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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