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내용 보니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경제협력 방안에 초점이 맞춰졌다. 역사교과서나 독도 등 민감한 주제는 아예 의제에서 배제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두 나라가 중소기업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점을 강조했다. 일본의 부품소재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하는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해 12월 구미, 포항, 익산, 부산진해자유무역지대 등 4곳을 최종 입지로 지정한 상태다. 이 대통령은 “오는 4월에 일본 투자구매 사절단이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두 나라 중소기업 사이에 인적 네트워크 구축과 정보, 경영 노하우 교환 등을 위한 ‘한-일 중소기업 시이오 포럼’이 올 여름 도쿄에서 처음 열릴 예정이라고 청와대는 말했다.
금융위기 극복 방안도 논의됐다. 두 정상은 특히 오는 4월 런던에서 열리는 제2차 주요20개국(G20) 금융경제정상회의를 앞두고 금융시스템 개혁과 거시경제 정책 공조, 보호무역주의 대처 등에서 긴밀히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한국이 금융안정포럼(FSE)에 가입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공동협력 방안과 관련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두 나라가 농업 지원과 직업 교육에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두 정상은 ‘셔틀 외교’ 회복도 강조했다. 청와대는 “두 정상은 앞으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와 공동 관심사에 관해 협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 첫 머리에 “취임 이래 저는 아소 총리와 다섯번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며 “양국 관계가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소 총리는 “이번 방문으로 셔틀 정상외교가 정착했다”며 “올해를 일-한 관계가 비약하는 해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대변인은 “지난 11일 두 정상의 환담에서, 아소 총리가 ‘우리도 유럽의 영국·프랑스·독일처럼 수시로 만나서 격의 없이 대화하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 대통령도 의견 일치를 봤다”며 “2월 중 나카소네 전 일본 수상이 방한해서 이 대통령의 연내 방일을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정상은 ‘과거사’에 관한 질문에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고 있다”(이 대통령), “성숙된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인식이 완전히 일치됐다”(아소 총리) 등 원론적 언급으로 피해갔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이번 정상회담을 보면, 이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일본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한-일간 경협 확대는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로 일본한테 뒤통수를 맞는 일이 없도록 균형감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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