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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맞선 중-러의 연합훈련
러일전쟁 무색한 한반도 정세
미국에 맞선 중-러의 연합훈련
러일전쟁 무색한 한반도 정세
한반도 주변 수역이 100여년 전 러일전쟁 때와 비슷해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내해인 서해는 이제 열강들의 공세적 군사력이 배치되는 ‘열전 수역’으로 변했다.
1904년 2월8일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끄는 일본제국 해군의 연합함대는 중국 랴오둥(요동) 반도 내 러시아 조차항구인 뤼순(현 다롄)항에 주둔하던 러시아 극동함대에 기습공격을 했다. 러일전쟁의 시작이다. 봉쇄당했던 러시아 함대는 6개월 뒤인 8월10일, 한반도 남쪽을 돌아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하려다 서해 공해상에서 기다리던 도고의 함대에 다시 일패도지했다. 황해해전이다.
극동함대를 지원하려고 파견된 발틱함대는 대서양~인도양~남중국해를 거치는 3만3천㎞의 일년간 항해 도중 뤼순항 함락 소식을 듣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1905년 5월27일 대한해협의 동쪽 쓰시마 해역을 통과하던 발틱함대는 도고의 함대에 포착되어 38척의 함대 중 35척이 궤멸되고, 3척만이 회생했다. 쓰시마해전이다.
지난 22일부터 27일까지 중국 산둥반도 칭다오 남쪽 공해상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최초의 공식 연합 해상훈련을 벌였다. ‘해상협력 2012’로 명명된 양국 연합훈련에서 러일전쟁 때 일본에 궤멸된 러시아 극동함대의 후예인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서해에 진입해 군사력을 과시했다.
중국 대륙과 한반도 사이에 끼인 서해는 지정학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내해이다. 그래서 서해가 국제전의 무대가 된 경우는 별로 없다. 신라의 삼국 통일 때 당나라가 고구려와 백제 정벌을 위해 군사력을 서해로 전개해 한반도에 상륙시킨 정도이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장보고가 해상권을 쥐고, 나당 교역을 통제했다. 임진왜란 때에도 이순신의 해군은 진도를 마지노선으로 왜군을 막으며 서해를 방어했다.
이런 서해에 열강들의 군사력이 전개된다면, 그건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패권 가름에 중대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얘기이다. 러일전쟁이 대표적 예이다. 러일전쟁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통째로 일본의 패권에 넘어갔다. 일본의 배후에는 당시 패권국가인 영국이 있었다. 영국은 자신의 유라시아 대륙 패권을 위협하던 마지막 세력인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일본을 후원했다.
이런 서해에 100년 만에 러시아가 돌아왔다. 소련을 견제하려고 미국과 화해했던 중국이 이제 미국과 맞서려고 러시아를 서해까지 불러들인 것이다. 양국은 1996년 상하이협력기구 결성 이후 6차례 연합 군사훈련을 했으나 모두 소규모에 비공식이었다. 2005년 양국 연합훈련이 서해에서 있었으나 비공식이었다. 이번 훈련은 양국 모두에서 20척 전함에 1만명이 참가한 최초, 최대 규모의 공식훈련이다.
2년 전 천안함 사건 때 미국은 항모 조지워싱턴호를 서해에 파견하며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발표했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결연히 반대한다”는 이례적 강경 성명을 냈다. 미군이 팀스피릿훈련 등을 통해 서해에 진입한 것은 다반사였으나, 항모가 서해 깊숙이 진입한 것은 이때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당시 작전 해역은 해상분계선부터 한반도 남쪽까지로, 중국 입장에서는 산둥반도부터 상하이 해역까지이다.
중국으로서는 남중국해에서부터 오키나와 해역까지 인근 국가와 영유권 분쟁을 빚는 데 이어 내해인 서해까지 미국의 군사력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법하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동남아 국가 손을 들어주며 개입한 미국은 중-러 연합 군사훈련에 맞춰 필리핀과 연합 해상훈련을 했고, 깜라인(캄란)만에서 베트남과도 연합 해상훈련을 벌였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으로의 귀환을 선언한 미국, 이에 맞서 러시아까지 서해로 불러들인 중국. 중-러 연합훈련 기간에 이명박 대통령은 ‘통미봉남’이 아니라 ‘통중봉북’이라며, 북한의 위성발사 비용이면 북한 주민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격렬한 대북 비난을 했다. 북한도 이 대통령을 동물에 비유하는 거친 욕을 하며, ‘혁명무력 특별활동’을 선언했다. 한반도 안팎 정세는 러일전쟁 무렵을 연상시키고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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