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북핵 문제를 둘러싼 움직임이 활발하다. 6자회담 미국 쪽 차석대표인 시드니 사일러 국무부 북핵특사가 최근 한국과 중국, 일본을 차례로 찾았고, 지난달 31일엔 한·미·일 6자회담 차석대표가 일본 도쿄에 모여 북핵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오히려 이란과 북한의 차이에 주목하는 시각이 더 많다. 하긴 핵심 당사자 격인 북한과 미국도 스스로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지 않은가.
그 차이가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는 점은 불행이다. 북한과 이란은 핵 개발 수준부터 다르다. 북한은 이미 핵실험을 3차례 했고 핵무기용 물질도 보유하고 있다. 얼마나 갖고 있는지, 파괴력이나 소형화 등 기술 수준은 어떤지 등을 두고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핵무기 보유 자체를 의심하는 전문가는 없다. 반면 이란은 핵무기가 없다. 아직 개발 단계다. 미국은 이번 합의로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걸리는 기간이 두세달에서 1년으로 더 멀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과 이란은 미국에 의해 ‘악의 축’으로 지목된 나라들이다. 두 나라 모두 비밀리에 핵 개발을 하다가 들통났다. 북한 핵 문제는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에 반발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본격 불거졌고, 이란은 2002년 반체제단체의 폭로로 알려졌다. 당연히 서로 신뢰라고 할 게 없다. 그렇다고 처지가 꼭 같진 않다. 북-미는 여러차례 합의문을 만들었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있었고, 2005년 9·19 공동성명, 2012년 2·29 합의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제대로 이행된 적이 없다. 반면 이란과 미국 사이엔 그런 ‘배신’의 기억이 없다. 오히려 이번 합의에 앞서 2013년 한시적인 ‘공동행동계획’(JPOA) 합의, 올해 4월 포괄적 잠정합의 등 나름 ‘협력’의 경험을 쌓았다. 불신의 수준이 다르다.
아마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란과 북한을 둘러싼 환경일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세계 최강 미국과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당장 핵무기가 없다고 체제 불안을 느낄 상황이 아니다. 이란은 핵 활동을 평화적 핵 이용이라며 핵무기 개발 의혹을 부인해 왔고, 핵확산금지조약도 탈퇴하지 않았다. 반면 석유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핵 포기 대가로 약속된 경제제재 해제의 유혹은 크다.
그러나 북한엔 핵무기가 체제 생존의 핵심 수단이다. 경제난으로 남한과 재래식 무기 경쟁을 할 능력이 없다. 휴전선을 경계로 한-미 연합전력과 직접 대치하는 상황에서 핵무기가 없다면 생존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하지 않고 있으며, 핵과 경제 병진 노선을 공언하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23일 의회 청문회에서 이란 핵 협상 타결에 대해 “실패한 북핵 협상의 경험이 반영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이란 핵 합의의 성공 경험을 북핵 협상의 밑거름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사실 케리 장관의 발언은 이번 협상에서 국제원자력기구가 군사시설을 포함한 모든 의심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강력한 사찰 규정을 관철한 것을 가리킨 말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경험에서 배울 게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협상이 성립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한 건 아닐까.
이란의 핵무기 포기는 경제제재 해제만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은 그것만으로 핵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를 체제 생존의 주춧돌로 여기는 만큼 북한이 안보 불안을 불식할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그만큼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지금 나서야 한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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