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저녁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협상 폐기 촛불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한 시민이 올려놓은 우산이 소녀상의 비를 막아주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위안부 재단’ 문제투성이
한-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12·28 합의’ 가운데 피해자 지원·치유를 위한 재단 설립 방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출연할 10억엔의 성격은 물론, 액수의 적절성, 한국 정부가 재단 설립 주체로 나서기로 한 점 등 원칙적·실무적 측면에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재단 설립·운영 방안은 크게 세 요소와 하나의 단서로 이뤄져 있다. 첫째,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한다. 둘째, 일본 정부가 예산 10억엔을 “일괄 거출”(한꺼번에 출연)한다. 셋째,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한-일 정부가 협력해 시행”한다. 이런 합의의 “착실한 실시”를 전제로 양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확인한다는 구조다.
■ 돈의 성격 논란
‘돈의 성격’에 대한 해석을 놓고 한-일이 벌써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예산 투입은 법적 배상은 아니지만 ‘정부 책임’을 인정한 ‘사실상 배상’의 성격을 지닌다고 한국 정부는 해석한다. 그러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배상은 아니다. 도의적 책임이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배상이나 보상이 아닌 ‘위로금’ 성격이란 주장이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30일 “‘위로금’ 성격이란 점에서 1995년 일본 쪽의 아시아여성기금과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같지만, 그때와 달리 ‘끝’이라는 단서가 달렸다는 점에서 더 나쁜 ‘논쟁적인 돈’”이라고 짚었다.
정부 부인하지만 일본 ‘연계’ 시사
재단설립 주체를 한국으로 명시
정부 돌이킬 수 없는 족쇄 될수도 일본 배상 부인…돈 성격도 논란
“아시아여성기금과 달리
‘이번이 끝’ 이어서 더 나빠”
■ 10억엔과 소녀상 철거·이전 연계?
더 심각한 문제는 일본 정부가 10억엔 출연을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소녀상) 철거·이전과 연계하겠다는 태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12·28 합의엔 “한국 정부로서도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이라고만 돼 있고, 정부도 “소녀상 이전 연계는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태도다. 하지만 기시다 외상은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면 합의’가 있을 수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일본 정부가 실제로 10억엔 출연을 소녀상 철거·이전과 연계할 경우 12·28 합의 전체를 뒤흔드는 ‘악마의 디테일’이 될 수도 있다.
■ 왜 한국 정부가 재단 설립?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끌어들여 합의 이행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재단 설립 방안을 “독창적 이행 메커니즘”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아시아여성기금 때처럼 중간에 발을 빼지 못하게 하는 족쇄로 재단 설립 주체를 한국 정부로 명시했다는 태도다. “한국 쪽이 재단을 만들어가는 게 첫걸음이다. 그게 없다면 사업은 진행되지 않는다”는 가나이 마사아키 일본 외무성 동북아시아과장의 발언(28일 기자회견)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10억 출연은 재단 설립을 전제로 한다는 지적인데, 피해자 할머니와 관련 단체의 반발 강도에 비춰 볼 때 재단 설립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정부는 일단 일본 정부와 협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재단을 출범시킨다는 시간표를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97억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10억엔은 97억4300만원이다. 정부에 등록한 피해자 238명(사망 192명 포함)한테 분배하면 1인당 4093만원꼴이다. 한국 정부가 관련 법령에 따라 등록 피해자한테 지원하는 생활안정지원금(월 126만원)과 간병비(월 105만5천원, 이상 2016년 기준) 등 각종 지원 방안을 논외로 하더라도 1인당 4300만원의 ‘일시 특별지원금’보다도 적다. 더구나 재단 운영비는 한국 정부가 내더라도 기금의 상당 부분을 관련 사업에 써야 해서 전액 일괄 분배할 수 없다. 재단의 성격에 비춰 한국 정부의 추가 출연도 기대하기 어렵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기념관 건설 등을 언급했지만, 재단의 기금 전액을 들여도 가능하지 않은 사업이다. 정부가 성격도 불분명하고 액수도 미미한 이 돈을 왜 받겠다고 합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은 이유다.
이제훈 김미향 기자 nomad@hani.co.kr,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재단설립 주체를 한국으로 명시
정부 돌이킬 수 없는 족쇄 될수도 일본 배상 부인…돈 성격도 논란
“아시아여성기금과 달리
‘이번이 끝’ 이어서 더 나빠”
30일 저녁 평화나비 네트워크 등의 단체 소속 대학생들이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문제 재협상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및 소녀상 이전 반대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위안부 피해자 재단 관련 한-일 합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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